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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떠나온 자리

- 태양이 떠나온 자리

by 갈대의 철학
눈이 내리면. 백미현

태양이 떠나온 자리

- 하늘이 떠나온 자리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바람이 일으켜

구름을 만드는 것도

한 순간이요


구름이 바람에

실려 떠나가는 것도

한순간이라네


한 꽃이

꽃봉오리에 꽃을 피우기까지

봄을 기다려야 하고


한 그릇 나무를 심어

열매가 맺히기까지

서너 해를 기다리는

기나긴 인내의

시간을 재촉하기까지


몇 해의 계절을 타야

열매가 맺힐 듯이

아니 맺힐 듯이 한 것도

모두 인연의 몫이려니


한 눈꽃이

아침 햇살에 영롱한 이슬 꽃

상고대가 맺힐 때까지

밤새토록 추위와 찬바람에

사리 꽃을 피우기 위해


오랫동안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과

산의 기운에

버팀목이 되어와

숱한 산세의 여정길을

견뎌내어 오듯이


한 떨기 서리꽃

상고대가 맺히는 것이

비롯 바람만이 아는

진실이 아니었으니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어김없이

구름을 몰고 다니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어김없이

구름이 지나가듯이


바람이 떠나온 자리엔

흔적을 남기지 않고


태양이 떠나온 자리엔

그늘을 만들지 않듯이


나는 한사랑을

가꾸고 지키기 위해서

그 순간의 미련을 버리고

갖지 않기로 하였네


2025.12.14. 치악산 금대트래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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