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는 것에 이유를 달지 말자
빈貧손과 빈객(貧客)
- 떠나는 것에 이유를 달지 말자
시. 갈대의 철학[蒹葭]
그대와 나와의 빈손
나는 그대에게 잠시 머물다 가는 빈객
그러니 우리는 한 몸도 한배도 아니오
호수 위에 드리워진 물안개도
잠시 머물다 사라져 가는 인생이고
낙엽 지며 떨어지고
바람에 이리저리 뒹길다
잠시 머물다 가는 것도 인생이며
계절에 맞게 옷 걸쳐 입듯이
철 따라 때를 벗음으로써
그대에게 다가가는 것 역시 인생이오
다시 돌아오는 계절을
어김없이 받아들일 거라
그저 그 자리에 그대가
잠시 머물다 가는 자리일 거라
흔적은 사라지며 잊히고
추억만이 존재할 거라 하면서
모든 사물의 떠남에 있어
다 같은 인생의 목적 앞에 선다지만
사연도 그렇고
이유도 남겨두지 않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이 길에
인생의 항로가 정해져 있지 않을까 생각하오만
떠나는 것에는 이유를 달지 않는 것은
마음이 이미 떠나왔었기에
너의 빈손에
나의 빈 잔에 채울 수 없는
빈 마음의 여유를 남겨두려 함 일지도 모르오
[2017.11.8 덕수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