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린다
- 가을바람과 함께
詩. 갈대의 철학
가을비가 봄비처럼 내립니다
봄비는
나무에 영혼을 심어주지만
찬바람 타고 떠나온
가을비는
나무와 내 마음에 영혼을 거둬들입니다
어느새 가을비에 동화되고 나면
가을비 우산 속을 함께 걷는 것은
비단 연인들만의 낭만이라고
치부하고 싶지 않습니다
늘 푸른 대죽의
푸르름의 높은 기상이기보다
텅 빈 강정 속의 빈 마음만
가득 머금기 때문입니다
동이 언저리 필 무렵 즈음에는
네 눈가에 이슬 꽃 피어올랐을 텐데
가을비 눈시울에
이내 젖어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이제는 여름철 못다 내린 비가
가을비답게
제법 촉촉이 내립니다
가을바람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심지가 곱게 내리는
가을비는
사군자의 뚜렷한 성품도 좋다지만
네 곁에서 살포시
겨울 냄새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게
나에 대한 너의 매력이었습니다.
이 비가 지난 뜨겁던 여름을
물리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있을는지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내 곁에서 멀지 않은
너에 대한 성숙된 의미의 해석을
찾을 수만 있었으면 바랬습니다
다시 내리는 가을비에는
너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싶습니다
이 가을비에
그래도 아직까지 씻기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은
지난날에 함께했던
너에 대한 페로몬 향수에
강한 현기증을 느껴보았기 때문입니다
너에 대한 지난 그리움의
여운만이라도 담을 수만 있었으면
이제는 덧없는 한량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