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맨정신엔 말 못할 개똥철학>
출발하기 전에 운전하면서 먹으려고 과자 세 개를 껍질을 까서 컵홀더에 넣어두었다.
그러다 출출해져 눈은 도로에 고정한 채 손을 더듬어 과자를 찾았는데, 두 개까지는 금세 집혔다.
문제는 세 번째였다.
나는 분명 세 개를 넣어뒀다.
하지만 손끝은 허공만 쓸었다.
컵홀더를 헤집고, 옆자리를 더듬고, 바닥까지 조심히 훑었지만 과자는 마치 존재 자체를 숨긴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갑자기 확신이 흔들렸다.
'내가 정말 세 개를 넣었을까?'
만약 내가 ‘세 개를 넣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나는 아마 두 개를 먹고 세 번째 과자 찾기를 몇 번 시도하다 “다 먹었네~”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세 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존재에 대한 확신’이 나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꽤 오랫동안 뒤적이다가 시트 사이 어딘가에 숨어 있던 과자를 겨우 끄집어냈다.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나는 잠시 내 무의식의 세계에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과자를 찾는 그 짧은 과정 속에, 내가 평소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끝까지 찾아내는 데는 최소한 세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존재에 대한 확신이고,
하나는 욕구다.
그리고 이 두 개가 모두 있어도,
마지막에 우연이 도와주지 않으면 끝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삶도, 그러하다.
우리의 손끝이 닿는 것과 닿지 않는 것들은 늘 이 세 가지 사이에서 갈린다.
확신이 있을 때 사람은 오래 버틴다.
욕구가 있을 때 사람은 먼저 움직인다.
그런데 확신과 욕구 모두 있어도,
때로는 끝내 닿지 않는 순간이 있다.
반대로 확신도 욕구도 없는데
뜻밖에 무언가 손에 들어오는 순간도 있다.
결국 우리의 인생은 확신·욕구·우연이라는 세 요소의 조합으로 계속 변주되는 서사다.
어떤 날은
확신이 있어서 무모해 보이는 일도 붙잡고,
어떤 날은
확신이 없어서 금세 포기하고,
또 어떤 날은
확신했지만 끝내 찾지 못해 돌아서야 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저 손을 넣어보았을 뿐인데 뜻밖의 것을 건져 올리는 일도 있다.
세 번째 과자를 찾던 그 순간,
나는 잠시 삶이 가진 경우의 수들을 본 듯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 반복되는 경우의 수 사이를 오가며
다시 한번 손을 넣어보는 행위를 계속하는 것 아닐까.
확신이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욕구가 넘칠 때도, 식어 있을 때도,
행운이 따라줄 때도, 모질게 비껴갈 때도.
그 모든 순간을 지나며
우리는 조금씩 ‘나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
다음 주 목요일 7시
"오늘은 사람을 쉬고 싶다"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