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맨정신엔 말 못할 개똥철학>
내향형 인간 이어서일까.
사람을 몇 명만 만나도 금세 지친다고 느끼는 날들이 있다.
결코 대단한 일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길을 걷다 잠깐 들른 가게에서의 짧은 응대,
몇 마디 오간 진료실의 대화,
가볍게 안부를 묻고 끊은 엄마와의 통화 정도였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을 뿐인데
집에 돌아오면 알 수 없는 피로가 남는다.
나는 무엇을 그렇게 많이 넘겨주고 온 걸까.
그런 날, 침대에 드러누워 하루를 되짚어보면
누군가와 오래 부딪힌 장면은 없는데
이상하게 이대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만 남아 있다.
몸이 피곤하다기보다는
잠시라도 사람을 조금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든다.
생각해 보면 나를 지치게 하는 건
꼭 큰 갈등이나 다툼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다.
상대의 말끝에 반응을 고민하다 괜히 한 번 더 웃어야 할 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설명을 덧붙이는 나를 참아낼 때,
내 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상대의 속도에 맞춰 고개부터 끄덕여야 할 때.
가끔은, 아니 자주
모든 사회적 관계를 접고
내 주관대로만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설명하지도 않고,
굳이 이해받으려 애쓰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다르고 각자 자기만의 주관으로 이 세상에 반응한다.
나는 그 다름을 존중하고 싶고 다양성의 가치를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존중과 배려를 앞세우다 보면
내 생각은 어느새 뒤로 밀리고
그 자리에 ‘무난함’이나 ‘적당함’이 대신 앉아 있는 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아직 내 생각을 그렇게까지 확신하지는 못한다.
내가 옳다는 믿음도 단단하지 않고,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혼자만의 주관으로 살아가기엔 조금 불안하다.
사람 속에 있으면 지치고,
사람 밖으로 나오면 불안하다.
어쩌면 나는 늘 그 사이 어디쯤에 서서
이 진리를 다시 확인하며
하루를 건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에 이른다.
내가 쉬고 싶은 건
사람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잠깐의 쇼핑이 힘들었던 이유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괜히 더 친절해진 나 때문이었고,
진료가 버거웠던 이유는 의사나 간호사 때문이 아니라
내 상태를 조리 있게 설명하려 애썼던 나 때문이었고,
엄마와의 대화가 피곤했던 이유는
그 엄마의 고리타분함을 티 내지 않으려 삼키던 나 때문이었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사람 앞에서 자꾸 조금씩
나를 잃어버리는 방식이 싫었던 것 같다.
오늘은 사람을 쉬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 생각을 다시 들을 수 있을 만큼만 조용해지고 싶은 날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쉬는 날은 다음에 다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를 회수하는 날이니까.
다음 주 목요일 7시
"자유는 생각보다 좀 무겁다"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