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생각보다 좀 무겁다

브런치북 <맨정신엔 말 못할 개똥철학>

by 늘보나무

자유 시간이 생기면

나는 종종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든다.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도 아니고,

꼭 보고 싶은 게 있어서도 아닌데

손은 자연스럽게 화면을 넘긴다.

추천 영상 몇 개를 보고 나면 시간은 꽤 흘러 있다.

분명 자유로운 시간이었는데 이상하게 내가 무엇을 선택했다는 기억은 없다.

무엇을 할지 정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보면 하루는 결정의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수없이 결정을 내리고 있었지만

그 결정들이 늘 자유에서 나온 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 시간이 주어질수록

결정을 내리기보다

이미 주어진 곳으로

도망치듯 흘러가게 되는 걸까.



혼자 EBS 강의를 듣던 아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엄마, 차라리 나 학원 보내주면 안 돼?”

“왜? 집에서 강의 들으니 편하고 좋지 않아?”

“아니, 이게 더 힘든 것 같아. 학원이 나아.”

시간도 있고, 해야 할 일도 분명한데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그걸 지켜내는 게

어려운 모양이다.

마치 내가 느꼈던 것처럼.

이번엔 정말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도 도무지 혼자서는 지키기 어려워

결국 PT를 끊게 된다.
충분히 자유롭게 내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상태인데
그 자유를 관리할 힘이 부족해서 대신 누군가에게 맡긴다.
시간표를 짜주는 사람, 지켜보는 사람,
중간에 그만두지 않게 붙잡아주는 사람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상태가
항상 가장 편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경제적 자유도 그렇다.
예전엔 다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기던 금액이
어느 순간부터는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기준은 조금씩 위로 이동하고,
자유로운 삶의 모습은
점점 더 구체적이고 비싸진다.


화폐 가치는 하락하고 물가는 오르는데
내 급여는 제자리에 머문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들이 자유의 기준을 끌어올리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근거들이 혹시

내가 자유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순간마다
더 자유로운 상태를 상상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 건 아닐까.

애초에 자유란 도착점이라기보다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말이었기에,
우리는 충분히 왔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자꾸 다음 기준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돌아보면
자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라기보다
무엇으로 채울지를 스스로 정해야 하는 상태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결정의 결과는 대개 나에게 남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자유를 가볍게 부르지 못하겠다.
자유는 갈망할수록 선명해지고,

선명해질수록
감당해야 할 몫도 조금씩 늘어나는
그런 단어라는 걸 점점 느끼기 때문이다.



다음 주 목요일 7시
"양자역학 일기장"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