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맨정신엔 말 못할 개똥철학>
어릴 때 나는 현실이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종종 빠지곤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은 누군가가 써둔 이야기일 뿐이고,
진짜 나는 이 일기장을 읽고 있는 존재라는 상상.
돌아보면 그 생각은 철학적인 꼬마여서가 아니라 너무 무서워서 나온 것이었다.
죽음에 대해 처음 또렷하게 인식했을 때,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언젠가 내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나라는 감각을 잃는다면 그다음에는 무엇이 남을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의 상태를 상상하는 일 자체가 공포였다.
그래서 나는 아예 진짜 나를 현실에서 빼내어 불사의 공간에 놓는 쪽을 택해버린 것 같다.
이 삶이 끝나도 읽는 나는 남아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설정은 꽤 오래 내 안에 굳건히 남아 있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마주해도, 신에게 구원을 청해보아도
그 공포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나중에 장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꿈속의 나비가 진짜인지, 나비의 꿈을 꾸는 장자가 진짜인지
끝내 가르쳐주지 않는 이야기.
구분하지 않는 태도, 답을 내리지 않는 선택.
아,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구나.
누군가는 이미 그 질문을 그대로 둔 채
살아가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있었구나.
시간이 흘러 이제 나는 어른이 되었다.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없지만 죽음은 살짝 옆으로 치워져 있다.
해야 할 일들, 지켜야 할 역할들, 오늘을 살아내는 일에 밀려서...
그러는 사이 어느덧 시간은 나를 그 질문 쪽으로 조금씩 데려가고 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는 순간들, 부고가 잦아지는 나이, 죽음이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머물지 않는 시기.
그럴 때 문득 어릴 적 상상이 다시 고개를 든다.
지금 이 현실이 과연 전부일까.
혹시 이 바깥에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있는 건 아닐까.
일기장을 읽고 있는 나는 지금 어떤 얼굴로 이 문장들을 보고 있을까.
참 재미있다며 웃고 있을까.
지루하다며 고쳐 쓸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일기의 끝에는 과연 어떤 문장이 적혀 있을까.
나는 오늘도 여전히
이 일기장 안에서 하루를 산다.
다음 주 목요일 7시
"우리는 왜 믿게 되었을까"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