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믿게 되었을까

브런치북 <맨정신엔 말 못할 개똥철학>

by 늘보나무

보험 설계사에게서 교통사고 법규가 많이 바뀌었으니 운전자보험을 재설계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보장 항목은 다양했고, 숫자는 복잡했다. 이게 정말 나에게 유리한 제안인지 좀처럼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AI에게 물었다. 조건이 괜찮은지 봐 달라고, 기존 보험과도 비교해 달라고 했다.

잠시 후 돌아온 답변은 명료했고 근거도 충분했다.

막막함이 걷히면서 ‘그래, 이 정도면 괜찮겠다’는 확신이 함께 따라왔다.


그 일을 남편에게 이야기하자 그가 말했다.
“AI가 보험사에 유리하게 말해줬을 수도 있잖아.”
그 말은 내 선택을 부정하기보다는
내 믿음의 출처를 흔드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왜 AI의 답변을 보고 안심했을까.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결정 버튼에 손이 갔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내 선택이 아니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 판단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 아집이나 착각이 아니라, 정보와 근거를 거쳐 충분히 검증된 결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AI에게서 얻고 싶은 건

완벽한 정답이 아니라

“이 판단이 나만의 것은 아니다”라는 확인인지도 모른다.
혼자 생각하다 잘못된 방향으로 치우친 건 아닐지에 대한 작은 안심.


예전 같았으면 이런 질문을 가족이나 선배, 친구에게 했을 것 같다.
“이거 어떻게 했어?”

"이렇게 나오는데 맞는 건가요?"
“네가 보기엔 괜찮아?”
질문의 목적은 같다. 내 판단이 너무 경솔하거나 섣부른 건 아닌지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질문을 사람에게 건네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괜히 부담을 주는 건 아닐지,
이해관계가 생기지는 않을지,
묻고 나서 설명해야 할 말들이 먼저 떠오르면 슬그머니 폰을 내려놓게 된다.
그래서 질문은 사라진 게 아니라 방향을 바꾼 것인지도 모른다.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되는 존재에게 건네지게 된 것이다.


AI의 완전무결함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내가 거절당하지 않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말을 고르지 않아도 되는

무해한 타자이기 때문에

AI는 내 맞은편 자리에서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막대한 정보와 선택지를 만들어

우리를 불확실함쪽으로 밀던 기계문명이 이제는 그 불확실함을

견디게 해주는 역할을 같이 맡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갈피를 못 잡던 현대인을

결국 기계가 구해준다고 느끼는 건

너무 앞서간 생각일까.


우리는 정말 속고 있는 걸까.
아니면
확신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믿음의 방식을 조금 바꾸고 있을 뿐일까.



다음 주 화요일 7시
"다시 어지를 걸 알면서도"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