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어지를 걸 알면서도

브런치북 <맨정신엔 말 못할 개똥철학>

by 늘보나무

아이 책상을 심란하게 바라보다가 기어이 참지 못하고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다 쓴 종이와 휴지를 쓰레기통에 넣고 필기구를 정해진 자리에 돌려놓는 일.

이 단순한 과정을 아이는 왜 이렇게 버거워하는 걸까.

이해심이라는 연료가 바닥을 보이면서 내 마음속에 조용히 경고등이 켜졌다.

결국 나는 아이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왜 이렇게 치우는 거야? 내가 또 어지를 수도 있는데.”

아이는 뜻밖에도 담담하게 반문했다.

순수하게 이유를 묻는 그 말에 나는 잠시 손을 멈춘 채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한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어차피 배출할 텐데 왜 먹나요?”

결과가 사라지는 일에는 굳이 힘을 들일 이유가 없다는 식의 농담이었다.
그 말을 떠올리다 보니 집안일의 반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정리한 책상은 저녁이면 다시 흐트러지고, 방금 청소한 바닥은 내일이면 또 먼지가 쌓인다.
끝이 뻔히 보이는 일을 매일같이 처음처럼 되풀이하는 느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에는 끝이 있어도 멈출 수 없는 일들이 의외로 많다.

그 반복은 완성을 만들기보다 상태를 유지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치우고 있었을까.
아이가 치워 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고 누군가가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청소와 정리를 스스로 결정해서 했다.
과정 속에는 결과보다 더 오래 남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깨끗해졌다는 눈앞의 상태보다
정리하는 동안의 마음,
이상적인 상태를 지켜냈다는 안심,
다시 내일을 준비했다는 작은 희망 같은 것들.


과정은 늘 흐릿하다.
손에 잡히지 않고 숫자로 환산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과정은 의미와 기대를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구간이다.
의미를 찾지 못하면 반복은 지루한 인고의 시간일 뿐이고,
의미를 찾으면 반복은 루틴이 된다.


또 하나, 관계도 그렇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지만 그 다름 사이를 우리는 비슷한 말들로 이어 붙인다.
“고마워요.”
“미안해요.”
“괜찮아요.”
“다음에 또 봐요.”
짧고 단순한 문장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오가는 구조.
그 반복이 없으면 관계는 금세 낯설어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일도 더 어려워진다.
생각해 보면 소통은 한 번의 깊은 공감보다 여러 번의 무난한 반복으로 더 자주 유지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은 거창한 설득이 아니라 작은 인사와 배려의 관성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 사이의 반복은 먼지가 다시 쌓이는 현실과 묘하게 닮아 있다.
완성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유지를 위해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반복이 누적되면 능력은 조금씩 자기 것이 된다.
처음에는 서툴러서 힘들던 일도 여러 번의 시행을 거치면서 나의 속도와 방식에 맞춰진다.
시간을 관리하는 노하우가 생기고
결정에 대한 확신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인내하는 마음도 함께 자란다.
인내는 작은 바퀴를 돌리다 보면 조용히 단단해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단단함이 다른 자리로 옮겨 간다.
그래서 반복은 눈에 보이는 성취보다 느리지만

때로는 결과보다 더 빠르게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끝이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오늘을 치운다.
내일을 완성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다시 한번 다가올 오늘을 살기 위해서.



다음 주는 개인사정으로 잠시 쉬어가려 합니다.

1월 22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