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맨정신엔 말 못할 개똥철학>
아파트 카페를 보다 보면 입주자대표위원을 향한 글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올라온다.
주차가 불편하다는 이야기,
놀이터가 위험하다는 이야기,
커뮤니티 센터 운영에 관한 이야기까지.
대부분의 글은 정중하다.
하지만 조금 더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정중함 안에는 분명한 기대가 섞여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 문제를 누군가는 해결해 주길 바라는 마음.’
그 누군가는 동대표이거나 입주민 회장이거나,
어쨌든 내가 아닌 사람이다.
그 자리에 선 사람들은 대개 봉사에 가까운 마음으로 직책을 맡았을 것이다.
권한은 크지 않고, 보상도 거의 없으며,
대신 모두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들어야 하는 자리.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 앉고 나면 고마움보다 요구가 먼저 도착한다.
잘하고 있을 때는 조용하고,
조금만 미흡해 보이면 의견이라는 이름의 불편함이 쌓인다.
나는 그 글들을 읽으며 묘한 이중적인 감정을 느낀다.
불편함을 말하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그 불편함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사람의 입장도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다.
온라인 글쓰기가 익숙해지면서 불편함을 표현하는 일은 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직접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고, 상대의 반응을 살피며 말을 고를 필요도 없다.
정확한 수신처가 없어도 일단 적어 올리면 누군가는 읽을 것 같고,
그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요청은 점점 많아지고,
책임은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불편함은 확인 없이 쉽게 공공의 것으로 놓이지만,
그 불편함을 처리하는 일은 여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이 구조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불편한 일이 생기면
‘누군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먼저 하고, 그 누군가가 내가 아니기를 은근히 바라게 된다.
직접 나서는 일보다 누군가가 대신 맡아주길 기대하는 마음.
그 마음을 나 자신에게서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어느새 이런 방식에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닐지,
그 이유가 조금 궁금해졌을 뿐이다.
모두가 불편함을 느끼지만 아무도 그 불편함을 전부 떠안고 싶지는 않은 시대.
대표자는 필요하지만 대표자의 자리는 늘 피로해지는 구조.
그렇다면 우리는 책임을 싫어하게 된 걸까.
아니면
책임을 지는 순간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지는 구조에 적응해 버린 걸까.
불편함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그 불편함을 맡아줄 사람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건 아닐까.
다음 주 목요일 7시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