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좋아하는 데에는

브런치북 <맨정신엔 말 못할 개똥철학>

by 늘보나무

아이의 학교 방학을 견디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급하게 여행을 결정하고 숙소를 알아보던 중
가성비는 좋지만 교통이 불편한 곳과
가격은 비싸지만 등급이 높고 교통이 좋은 곳
두 곳으로 선택지가 좁혀졌다.
출발 당일까지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더 인기가 많은 쪽을 골랐다.

처음엔 들인 돈을 의식해서인지
그냥 기분 탓인지

구분되지 않는 막연한 들뜸만 있었다.
그러다 입실 후 마주한 창밖 풍경 앞에서
비로소 확신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싼 값을 치르면서까지
이곳을 선택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구나 하고.

어디를 가든
입지가 좋은 집은 괜히 비싸지 않고,
사람들이 줄 서는 가게에는 대체로 평균 이상의 맛이 있다.
처음엔 조금 못마땅하다.
왜 다들 비슷한 곳을 좋아할까.
왜 꼭 거기여야 할까.
하지만 막상 경험해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이 온다.
동선이 편하고, 불필요한 설명이 필요 없고,
몸이 먼저 납득해 버리는 경험 앞에서
의문은 자연스럽게 힘을 잃는다.


많은 사람이 선택한 자리에는
대체로 시간이 만든 통계가 쌓여 있다.
그 선택은 누군가의 첫 판단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가 걸러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실패를 겪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남은 이유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인기와 가격이 되었을 가능성.
그러니 다수가 선택했다는 사실은
생각 없이 몰렸다라기보다
실패 확률이 낮아졌다는 신호에 가깝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은 더 자주 고개를 든다.
젊을 때는 ‘나는 다를 수 있다’는 감각이 중요했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보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쪽이 더 끌렸고,
불편함마저 개성처럼 여길 수 있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호불호가 대중 쪽으로 조금씩 옮겨간다.
편한 동선, 검증된 맛, 무난한 선택.
그건 개성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굳이 실패를 다시 겪고 싶지 않아 졌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나보다 먼저 어딘가에 가본 사람들이 참 많다.
먼저 선택해 본 사람들,

먼저 잘해본 사람들,
그리고 먼저 망해본 사람들까지.
그들의, 선택과 포기 발자국들이
지금의 ‘인기’와 정답처럼 보이는 길을 만들어 낸다.
그 사실을 자주 떠올리게 되면서 나는 점점 더 함부로 자만하기 어려워졌다.
“나는 다를 거야”

라는 말이 예전만큼 가볍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대중적인 선택을 마주할 때
예전처럼 괜히 한 발 물러서기보다

한 번쯤 이유를 생각해 본다.
왜 다들 여기를 좋아할까.
무엇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설득했을까.
그 이유를 이해한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이유를 인정하는 태도는
세상에는 나보다 먼저 충분히 고민해 본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다음 주 목요일 7시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