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세상이 멈췄다.
아니, 내가 멈췄다.
너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나는 얼어버렸다.
숨이 막혔다.
심장이 멈춘 듯했지만,
여전히 뛰고 있었다.
오히려 더 빠르게.
이별이 찾아온 것이 아니다.
이별은 이미 진행중이었다.
말소리는 이어지지만,
울림은 나에게 닿지 않았다.
두꺼운 진공 너머의 세상처럼
움직임은 있지만,
연결은 없다.
혼자가 되었다.
그런데, 너는 사라지지 않았다.
내 안의 너는
더 강하고. 더 무거워졌다.
지구를 벗어나기 위한 속도. 11.2km/s.
탈출속도.
속도가 부족하면,
벗어나지 못한다.
추락하고,
그 궤도 안에 영원히 갇힌다.
마음에도 속도가 있다.
누군가의 중력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
사랑했던 만큼의 이별.
끌렸던 만큼의 반동.
지금 이 무너짐도,
눈물도,
분노도,
모두 벗어나기 위한 가속이다.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날아오르고 있는 중이다.
불안.
두려움과는 다른,
대상 없는 떨림.
존재 자체에 대한 흔들림.
부재 앞에서 그 떨림을 마주한다.
세상은 조용하지 않다.
네가 빠져나간 자리에,
텅 비어 버린 건 나였다.
어쩌면, 나는
너와 함께 할 때 조차도
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너의 반응에 따라 흔들렸고,
너의 침묵에 따라 멈췄고,
너의 리듬에 맞춰 숨쉬었다.
나는 너의 위성이었다.
너는 사라졌고, 나는 남았다.
그 공백 안에서, 나만의 진동을 들었다.
아직 약하지만, 분명한 나만의 주파수.
'타자가 사라질 때, 나는 비로소 나를 본다.'는
사르트르의 이야기 처럼
너의 시선은 늘 내 위에 있었고,
나는 그 시선 안에서 나를 만들었다.
웃는 모습, 말하는 리듬, 심지어 꿈꾸는 방향까지.
네가 사라졌을 때, 모든 기준이 무너졌다.
누구를 위해 웃어야 할까,
어떤 목소리로 말해야 할까,
어떤 꿈을 꾸어야 하지.
무력함 속에서 끊이지 않는 질문들.
나는 누구지.
나는 원하는 건 뭐지.
나는 나만의 궤도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떤 관계는 중력처럼 작용한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이미 중심이 휘어진다.
시공간 자체가 구부러진다.
끊는 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속해야 한다.
충분한 속도까지.
이별은 멈춤이 아니다.
더 빠르게,
더 멀리,
그 휘어진 공간을 벗어나기 위한,
끊임없는 움직임이다.
이별은 폭발이다.
압축되었던 것들의 한 순간의 방출.
분해를 통한 전혀 다른 것으로의 변신.
이별은 슬픔이 아니라,
탈출을 위한 추진력이다.
탈출 후의 세계는 무중력.
자유롭지만 낯설다.
모든 기준이 사라진 채
내가 나를 붙잡아야 하는 시간.
무중력은 의지없는 부유가 아니다.
모든 방향이 가능하지만,
어느 방향으로도 갈 수 없는 막막함.
망각은 행복의 조건이라고 한다.
망각은 이해가 필요하다.
내 안의 잔류하는 감정의 근원,
감정의 방향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비로소 방향을 바꾼다.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질문이 멈추는 순간
진짜 이별, 진짜 자유, 진짜 시작이 있다.
도망이 아니라, 나에게 도달하기 위한 도전이다.
나는 이제 나만의 궤도를 돈다.
나만의 진동수로,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향으로.
무너졌던 모든 감정은 나를 찾는 추진력이다.
격렬했던 분해와 재조합이 탈출속도를 만든다.
오늘도 나는 작은 진동 하나를 품고, 조용히 나아간다.
누구도 휘게 할 수 없는 나만의 궤도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