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돌아갈 수 없는 말,
되풀이할 수 없는 표정,
처음이었지만 마지막이 되어버린 장면.
무엇을 잃은지도 몰랐다.
아무 일도 없었고, 그냥 하루를 살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그 하루가 내게 돌아왔다.
후회는 언제나 늦다.
늦게 도착한 감정은
이미 멈춘 장면 위를 서성인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그 장면은 나를 통과하고 사라진다.
'그땐 왜 그랬을까.'
이미 지나간 일,
이제는 아무 소용없는 일.
마음은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사라졌다고 없어진 것이 아니다.
돌아올 수 없다고 멈춘 것도 아니다.
후회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 위에 남겨진 감정의 섭동이다.
시작은 미세했지만,
마지막은 마음 전체를 뒤흔든다.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산산이 흩어진 유리잔의 조각은,
다시 하나의 잔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식어버린 커피,
구겨진 편지,
눈을 맞추지 못한 마지막 인사.
모든 게 다,
비가역적인 시간의 결정이다.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마음이 조용히 무너진다.
무너짐은 소리가 없다.
무수한 입자들이 서로의 결을 잃는다.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용히 붕괴한다.
기억은 편집된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사실은 흐려지고, 감정만 남는다.
그래서 후회는 사실이 아니다.
감정의 거울이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다.
원하고 바랬던 모습으로 기억을 덧입힌다.
그때, 그 말을 했더라면.
그 순간, 손을 잡았다면.
바뀌지 않는 결과 위에
수없이 다른 나를 덧씌운다.
그 안에서 나를 어르고 또, 달랜다.
그리고, 결국 혼자 남는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되돌아갈 수 없는 그 방향성.
이것이 후회의 모습이다.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결정과 선택들은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은 시간 밖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그 자리엔 후회가 남는다.
후회는 언제나 선택하지 않는 쪽을 향한다.
선택받지 못했기에,
더 선명하다.
더 간절하다.
선택의 의미는, 돌이킬 수 없음에 있다.
돌이킬 수 있다면, 선택의 의미는 사라진다.
수없이 많은 세계선에서 단 하나를 선택했다.
다른 모든 우주는 내 안에서 후회라는 이름으로 흔들린다.
'우리는 언제나 가능성의 존재다.'라는
하이데거의 언어처럼,
후회는, 선택하지 않은 다른 문 앞의 서성임이다.
열 수 없는 문을, 계속 두드리는 마음이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선택은 존재의 증명이고,
후회는 그 책임을 자각하는 순간이다.'라고.
후회는 종종 변명을 한다.
그때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하지만 듣지 않았다.
몰랐던 것이 아니다.
다만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후회는 무지가 아닌 인식의 지연이다.
후회는 늘,
늦게 도착한 진심이다.
되돌릴 수 없는 진심.
하지 못한 말,
전하지 못한 마음,
닫아버린 마음의 문.
모든 잔여는 시간이 멈춘 공간이다.
지나는 바람은 다른 계절 부른다.
후회는 계절이다.
다시 왔다 말하지만, 다른 계절이다.
다시 찾아온 봄은, 지난봄과는 다른 봄이다.
비가역적이다.
돌이킬 수 없다.
절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방식일 뿐이다.
되돌릴 수 없기에,
오늘을 더 조심히 살아간다.
되돌릴 수 없기에,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미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후회하지 않기 위한,
완벽한 선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후회하더라도,
그 후회마저 그냥 나의 일부로 품을 수 있으면 충분하다.
오늘 하루도, 되돌릴 수 없다는 진실 안에서 나를 조용히 쌓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