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돌아섰다.
아무 말없이.
멈추지 않고 떠오르는 기억이 괴로웠다.
마주할 수 없었다.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그때의 나에게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몸은 멀어졌지만, 마음은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남겨진 말.
닫히지 못한 표정.
끝나지 않은 감정.
용서.
지운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지웠지만 끝나지 않는 것들을 다시 품는 일이다.
하지 못한 말,
듣지 못한 목소리,
지나쳤던 시선 하나가 시간을 가로질러 돌아온다.
움직이려는 마음 밑에는 보이지 않는 저항이 있다.
기억의 마찰.
감정의 응력.
그 모든 저항 위에서
나는 다시 걸음을 준비한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작용하는 마찰력의 크기가 가장 크다.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머문 물체일수록,
접촉면은 조용히 밀착되고,
첫 움직임에는 더 큰 힘이 필요하다.
감정도 그렇다.
오래된 상자일수록 바닥에서 떼어내기 어렵고,
오래 멈춰 있던 마음일수록 첫 움직임이 더 힘겹다.
묵은 마음일수록 그 안의 입자들은 더 단단히 맞물린다.
오랜 시간 마음 한편에 눌러둔 감정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용서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움직임일지라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 마찰을 견디는 힘. 용기.
용서는 마주할 수 없던 것을 조금씩 마주 보는 일이다.
감당하지 못했던 감정을 지금의 내가 천천히 어루만지는 일이다.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더 이상 멈춰 있지 않기 위한,
나를 향한 작은 움직임이다.
그 저항은
내 안에 쌓여 있던 열처럼,
마찰에 의한 감정의 잔열처럼,
서서히 태우며 움직임의 방향을 만든다.
늘 그렇듯
돌아오는 기억은 같은 모습이 아니다.
처음엔 상처,
그다음은 분노,
지금은 말없이 잠긴 침묵이다.
그리고, 침묵을 통해 내 안의 언어를 다시 배운다.
용서란, 그 언어로 나를 다시 부를 수 있게 되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마찰의 의미도 변한다.
처음에는 방해였지만, 어느 순간 나를 붙잡아 주는 힘이 된다.
방해가 아닌 조정.
막힘이 아닌 지지.
감정의 마찰은 다시 살아가는 접지력이 된다.
어떤 날은 용서했다고 믿는다.
어떤 날은 다시 그 앞에 멈춘다.
가슴이 결리고, 숨이 얕아진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 고통 앞에 등 돌리지 않는다.
이제는 조금은 천천히,
감정의 결을 따라가며 흔들리는 걸음을 허락한다.
그 걸음은 다르다.
기억의 궤도는 비선형이고, 고통은 직선이 아니다.
용서는 궤도를 따라 휘어진 방향으로, 다시 걸어가는 일이다.
용서에는 소리가 없다.
빠르지도 않고, 극적이지도 않다.
내면 깊은 곳에서 작은 흔들림이 시작되고,
그 진동이 멈추지 않는 일.
파동은 기억의 저편에 닿고,
마음속 단단하게 굳은 결을 조금씩 풀어낸다.
감정은 파동이다.
마찰과 진동, 그리고 감쇠.
그 미세한 진동들이 나를 조용히 다시 흔든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위를 다시 걸을 수 있게 될 뿐이다.
처음은 조심스럽게,
다음은 느릿하게.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기억은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그 기억을 품고, 나의 결을 다시 짓는다.
존재는 언제나 시간 속에서 이해된다는 하이데거의 언어처럼,
용서는, 과거의 시간을 고정시키지 않는다.
미래로 열어두는 존재를 선택한다.
그리고, 과거에서 벗어난다.
니체의 행복의 조건, 망각.
용서는 잊는 것이 아니라, 감당하는 힘이다.
용서란, 아픔을 없애는 일이 아닌,
그 아픔을 품는 고유한 리듬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다.
새로운 구조로 이해하고 배치한다.
인지적 재구성이다.
기억하는 방식,
말하는 언어,
반응하는 결.
그 모든 것을 다시 구성하는 일.
파동은 계속되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내 속도에 걸음을 맞춘다.
오늘도 조용히,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 위를 지난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다시 멈추지 않기 위해,
오늘도 결을 바꿔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