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존재가 모순 같은데

by 늘람

나는 운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작년에 중고차를 구매한 이후로 어느새 유튜브 추천 목록이 중고차 콘텐츠로 가득 차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을 텐데,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것은 내가 특이하고 예쁘고 귀여운 차들에 끌린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링컨 내비게이터 같은 거대한 SUV에도 마음이 간다.

이게 대체 무슨 일관성인가?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시골 생활을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싫어한다기보다는 두렵다. 누군가 나를 아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내가 모르는 사람도 나를 알고 있을 수 있다는 부담감이 숨 막힌다. 대중교통의 불편함도 있지만, 사실 그보다는 투명인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무겁다. 도시에서는 집 밖으로만 나가면 거의 모든 사람이 낯선 이들이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나는 전원생활 유튜브를 열심히 본다.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모습들, 직접 기른 채소로 요리하는 장면들에 마음이 끌린다. 보면서 느끼는 것은 단순한 동경이 아니다. 묘한 질투 같은 것도 있고, 동시에 '저런 삶은 나와는 맞지 않아'라는 안도감도 있다. 복잡하고 이상한 감정이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하다. 나는 정말 일관성이 없는 사람인 걸까?

물론 이런 특징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인간은 본질적으로 안정감과 모험심, 소속감과 독립성, 편리함과 자연스러움 같은 상반된 욕구를 동시에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닐까?

그러다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안정된 시스템이라 할지라도 외부 자극이 가해지면 평형점 주변에서 진동한다는 것. 완전히 정지된 상태는 절대영도에서나 가능한 이상적 상황이다.

혹시 인간의 심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나의 고정된 취향에 머물기보다는 여러 욕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인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 보니 도시생활과 전원생활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이 병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살아있는 존재의 증거일 수도 있겠다. 다양한 에너지 상태를 탐색하며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말이다.

우리의 내면은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가진 여러 욕구들이 공존하는 공간 같다. 서로 다른 파동들이 간섭하며 복잡한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때로는 보강간섭으로 특정 욕구가 강하게 나타나고, 때로는 상쇄간섭으로 모호한 감정 상태가 된다. 내가 전원생활 유튜브를 보면서 느끼는 것도 프라이버시에 대한 욕구와 자연에 대한 갈망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절묘한 균형점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복잡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취향이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젊을 때는 명확하고 단순한 취향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면이 더 풍부하고 복잡한 상태로 진화하는 것 말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뭔가 한 가지를 정확히 알려고 하면 다른 것은 모호해지는 것 같다는 점이다. 현재 자신의 정확한 취향과 그 변화 방향을 동시에 완벽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내가 "나는 일관성이 없다"라고 느끼는 것도 이런 애매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연 '진짜 나'라는 것이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는 애초에 다면적이고 유동적인 존재인 걸까? 현대 철학과 심리학은 점점 더 유동적이고 맥락적인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의 모순된 욕구들은 결함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풍부함을 보여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내가 전원생활 유튜브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가능성의 탐색일 수도 있겠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처럼, 우리는 완전한 형태의 삶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는 없지만 그 이상을 품고 살아갈 수는 있는 것 아닐까?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이 오히려 우리를 더 풍부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결국 복잡성과 불확정성은 우주의 기본 특성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심리적 복잡성도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일관성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우리 내면의 다양한 음성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고차 유튜브와 전원생활 유튜브를 동시에 보는 것, 귀여운 차와 거대한 SUV를 동시에 좋아하는 것이 우리가 복잡하고 아름다운 인간이라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웃긴 것은, 이런 글을 쓰면서도 나는 여전히 내 안의 모순들을 발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순을 받아들이자고 했으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은밀히 일관된 결론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아마 내일이면 또 다른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져들며 새로운 모순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다시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아, 나는 정말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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