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날 오늘

by 늘람

나는 오늘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날이라고 자주 말한다.
그 말에는 언제나 조심스러운 마음이 따라붙는다.
어쩌면 스스로를 다독이고, 설득하고,

세상 속에서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주문인지도 모른다.


군대를 가기 전,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나는 부모의 그늘 아래에서 살았다.
그때는 내가 세상의 무게를 짊어질 필요가 없었다.
당연한 듯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꿈을 꿨다.
해야 할 일도, 책임져야 할 것도 없었으니
아무래도 그 시절이 가장 편안했던 건 틀림없다.


하지만 그 시절은 어디까지나 준비 과정일 뿐,
내가 내 삶의 책임을 스스로 지고 살아야 하는 시기는 아니었기에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날’에는 넣지 않는다.


세상의 짐을 어깨에 올리기 시작한 건
군대에서 상병을 달았을 때였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수술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휴가를 나가 아버지를 뵈었다.

수술 날짜가 내 복귀일자 보다 늦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군에 복귀했고,

수술 후의 소식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한 달 넘게 지난 후에야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수술은 한 번에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러 번의 재 수술을 통해 아버지는 숨 쉬고 계셨지만,

움직이시지도, 말씀을 하시지도 못한 채,

13년을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그때의 내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그 시간은 나의 뇌를 멈추고, 내 마음을 굳어 버리게 만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때부터였다.
나는 하루하루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겁게 쌓여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간병하던 어머니의 눈빛,
병실을 오가던 가족들의 침묵,
그 속에서 나는 서서히 ‘나의 일상’이라는 것이 달라졌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에 돌아왔을 때,
나는 그제야 현실의 무게를 제대로 느꼈다.
졸업을 위해 공부하는 시간과 아르바이트하는 시간을 번갈아 오가며,
늘 부족한 잠과 부족한 시간 속에서 지냈다.
낮에는 강의실에서 책상 위에 쌓인 수업 내용을 따라가느라 애썼고,
저녁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며 피곤함을 달랬다.
시간은 늘 쪼개지고 쫓기듯 흐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 모든 것이 결국 나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믿었다.

피곤한 몸과 달리 마음만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려는 관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4학년 때는 학원에서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취업 준비라는 별도의 활동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하루를 버티고 한 달을 채우고 한 학기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학원 강사로서 아이들 앞에 서 있는 순간만큼은
삶의 무게가 잠시 가벼워지는 듯했다.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설명을 하다 보면,
나의 삶도 조금은 명료하게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졸업을 맞이했고, 나는 여전히 학원 강사의 삶을 이어갔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준비되지 못한 삶이라 했지만,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나는 결혼을 했다.

그 시절에는 그것을 효도라고 여겼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조금은 편안해질 거라 믿었지만,
결혼과 함께 두 아이의 아빠가 되자
세상의 무게는 오히려 더 크게 나를 누르기 시작했다.
책임감은 커졌고,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행복과,
그 행복을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감 사이에서
나는 흔들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 모든 감정은 마치 서로 다른 진동수로 움직이는 파동 같았다
삶의 무게와 기쁨의 진동이 뒤섞이며,
나는 때로는 길을 잃고, 때로는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나는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늘 미안함이 앞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 영향력은 내 삶을 놓지 않았다.
악순환처럼 반복되는 사건들,
나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 놓은 책임의 덫들,
그 속에서 나는 자주 무너졌다.
물론 그 안에는 나의 철없음도 있었다.
아직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감정과 분노와 막막함 속에서 발버둥 치던 나.


하지만 그 시간들 덕분에
나는 지금의 나로 살아갈 수 있었다.


나는 과거를 잘 떠올리지 않는다.
아니, 떠올릴 수 없다는 쪽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하고 싶어 했는지,
그 모든 것들이 자꾸 희미해졌다.
그래서일까, 한동안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도 모른 채 살아왔다.


두 달 전부터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잊었던 것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잊은 줄 알았던 장면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마음들,
그리고 그 안에 묻혀 있던 어린 날의 나.


글을 쓴다는 건, 잊었던 나를 되돌아보는 일이었다.
과거의 파동이 현재의 내 안에서 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
시간이라는 매질 속에서 멀리 사라졌던 감정이
다시금 파장을 일으키며 내 마음의 표면을 흔들었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도,
옳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이제는 내려놓고 싶었다.
나는 그저 나라는 존재를 기록하고 싶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을 한 문장씩 쌓아가고 싶었다.


물리학을 가르치며 살아온 세월 동안,
나는 세상을 늘 법칙으로 이해하려 했다.
빛이 굴절되고, 파동이 간섭하며,
운동량이 보존되는 세계를 설명하듯
내 삶도 그렇게 설명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깨달았다.
물리학적 질서 속에 놓인 인간의 삶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언제나 예측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물리학일지도 모른다.
혼돈과 질서가 맞닿은 곳,
파동과 입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


오늘도 나는 창을 연다.
햇살이 벽에 드리우는 작은 그림자가 보인다.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나는 조용히 문장을 쓴다.


글을 쓰는 순간,
내 안의 파원에서 파동이 시작된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나며
낯선 공명이 만들어진다.
그 공명은 다시 새로운 나를 향해 나아간다.
내 삶의 힘이다.


나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글을 쓴다.
오늘의 내가 남길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진동을,
이 문장 속에 남기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날이라고.
그리고 그 말은,
내가 지금까지 견뎌온 모든 시간을 품은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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