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하늘은

by 늘람

나는 오래전부터 하늘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맑은 하늘도, 흐린 하늘도, 비 내리는 하늘도.

한낮의 눈부신 하늘, 밤의 깊이를 담은 하늘,

봄과 가을의 온화한 바람이 섞인 하늘, 한여름의 뜨겁게 끓어오르는 하늘,

겨울의 차가운 숨결이 얹힌 하늘까지도.


하늘을 바라볼 때는 어김없이 떠나고 싶은 마음이 따라왔다.

단순한 여행의 갈망이 아닌, 지금의 자리에서 잠시 벗어나도 된다는 신호처럼 느껴지는 감각.

하지만 그 사실을 나는 한동안 잊고 살았다.


숙인 시선

언제부턴가 나는 땅을 보며 걸었다.

출근길에는 신호등을, 업무 중에는 컴퓨터 화면을, 퇴근길에는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눈앞의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 걸으며, 바쁘다는 이유로 멈추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별것 아닌 사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은 늘 눈앞에 있었고, 시간은 항상 부족했으며, 머릿속은 온갖 걱정으로 가득했다.

어린 시절 구름을 따라 걸었던 나는, 이제 발밑의 보도블록만 세며 하루를 보냈다.


붉은 하늘의 숨결

어느 저녁.

평소보다 늦은 퇴근길, 신호등 앞에서 멈춰 섰다.

언제나처럼 휴대폰을 꺼내려다가, 무심코 고개가 들렸다.

하늘이 붉게 저물고 있었다.


짙은 보랏빛과 주황빛이 하늘 끝에서부터 스며들고 있었고, 그 사이로 구름이 느릿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광경은 나를 그 자리에서 완전히 멈추게 했다.

신호등이 바뀌었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가슴 어딘가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오래 잊었던 감각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꽁꽁 얼어붙어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

아, 그래. 이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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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결'과 '시간의 흐름'을 따라, 조용히 스며드는 이야기를 씁니다. 늘 머무르며 흐르는 글로 만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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