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가능성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by 늘람

우리는 익숙한 언어로 사회를 설명한다.

누구나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고,

생각은 명확하며,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칠 때 갈등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가려내면 언젠가는 정리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대상을 하나의 형태로 붙잡고,

그 형태를 기준으로 이해하는 데 익숙하기에

이 방식은 오랫동안 문제없이 사용되었다.

그렇다 보니 사람에게도 같은 방식을 적용했다.

하나의 입장, 하나의 성향, 하나의 방향으로

단순하게 보아야

그들을 몇 가지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학은 이미 오래전에 그 방식을 버렸다.

입자는 더 이상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점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관측될 때만 위치를 갖고, 그 이전에는 특정한 위치로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고정된 점처럼 다룬다.

반복된 관측 속에서 결과는 일정한 분포를 이루며 안정적으로 나타나고,

우리는 그 분포를 그대로 두는 대신 하나의 값을 택한다.

그리고 그 값을 위치라고 부른다.

그 선택은 자연이 내려준 중심이 아니라, 분포의 난해함을 해결하기 위해 택한 방식이다.

그래서 입자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고정된 결과처럼 다루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그 분포를 실제로 본 적이 거의 없다.


관측에 대해서도 비슷한 오해가 있다.

관측이 세계를 하나로 만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세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관측자가 하나의 결과에 머무르게 되는 것뿐이다.

다른 가능성들과 더 이상 연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하나의 결과만을 경험하게 된다.

세계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하는 범위가 하나로 제한되는 것이다.

이 차이는 작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차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차원을 위계로 이해하려 한다.

높고 낮은 구조, 더 많은 것을 포함하는 방향.

하지만 차원은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같은 방식의 관측과 인식이 반복되고,

그 결과들이 공유되면서 하나의 안정된 기준이 만들어진다.

무엇을 중요하게 보고,

무엇을 변수로 삼고,

어떤 변동을 지우고,

어떤 값을 현실로 받아들이는지.

그 선택들이 반복될 때 우리는 그 상태를 하나의 차원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차원은 높고 낮은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정된 결과들일뿐이다.


이때 하나의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다.

어떤 값이 중심으로 선택되는 순간, 나머지는 설명에서 멀어진다.

사라졌다고 말하기보다는, 더 이상 다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없다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실제로는 없는 것처럼 사용한다.
그래서 무엇이 사라졌는지는 인식하지 못한다.


같은 분포를 보고도 서로 다른 중심을 택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만들어진다.

어떤 집단은 위기라고 말하고,

어떤 집단은 성장이라고 말하며,

어떤 집단은 불가피한 결과라고 받아들인다.

이 차이는 정보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냈는지의 차이에서 생긴다.

그리고 각자는 자신이 남겨둔 값을 현실이라고 부른다.

같은 것을 보았지만 같은 것을 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갈등은 누군가가 틀렸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남겨진 결과들이 같은 현실 위에서 겹치기 때문에 생긴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위상을 가진 파동이 만나면 간섭이 생기듯,

같은 사건 위에 서로 다른 선택이 겹칠 때 충돌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이때 설득은 쉽게 작동하지 않는다.
이미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설득은 하나의 방향으로 모일 수 있다는 전제를 갖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정된 상태 사이에서는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해는 포함이 아니라 번역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순간에는 기준이 흔들린다.

하나로 유지되던 결과가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을 때,

남겨두지 않았던 것들이 다시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그때 사람들은 같은 답을 갖지 않으면서도 비슷한 불편함을 공유하게 된다.

그것은 합의라기보다 동시성에 가깝다.

설명이 같아지지 않아도, 무엇이 충분하지 않은지는 동시에 드러난다.

새로운 기준은 이 지점에서만 만들어진다.

그전까지는 같은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같은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글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세계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선택하여 남겨둔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루지 않았던 것들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다루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현실적’이라는 말로 가능성을 닫는 것과,

빠른 판단을 위해 낮은 확률이라는 이유로 가능성을 삭제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말을 끝까지 지킬 때,

갈등은 사라지지 않더라도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직 충돌이 계속되는 것은

우리가 이 상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우리가 확신하고 있던 것은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남겨둔 하나의 단면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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