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언어 이전의 진동
린은 구부정한 새벽을 품은 도시, 제네바의 한 복합연구소에 도착했다. 산허리를 감싸 안은 안개는 미세하게 진동했고, 그 진동은 린의 왼쪽 귓바퀴에만 희미한 파형을 남겼다.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파동을 지닌 감각자들에게 어떤 암호처럼 작용해 왔다. 그녀는 그것을 '기억의 프리즘'이라 불렀다. 단지, 타인에게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연구소는 비선형 동역학과 위상적 양자이론, 계산혼돈 구조 등을 융합적으로 연구하는 국제 기초이론 연구센터였다. 공식 명칭은 'CIVI'—Centre for Interdisciplinary Visions of Infinity. 그 이름이 품은 무한의 의미처럼, 건물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나선형으로 솟아 있었다. 린은 한국에서 박사과정 입학 후 파견연구의 형태로 여기에 합류하게 되었고, 그녀의 논문 주제는 '위상기하 공간에서의 시간 간섭파 해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은 이미 훨씬 다른 질문을 품고 있었다. 시간은 진동하는가, 아니면 존재가 진동하기 때문에 시간이 발생하는가. 이 질문은 그녀가 열 살 때부터 듣기 시작한 이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연구소에서의 첫날, 린은 배정된 공간에서 복잡하게 얽힌 수식들과 위상공간의 격자 구조 모형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알프스의 안개 낀 산맥이 보였고, 그 윤곽선은 마치 미분방정식의 해를 그린 것처럼 유동적이었다. 외부에는 연구 과제의 개요가 적혀 있었지만, 내부의 마음은 오히려 단순했다. "이론의 경계를, 감각의 조각으로 재배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린을 이곳까지 이끈 실질적인 연구 주제였다. 손가락으로 창문을 두드리자, 유리를 통해 전달되는 진동이 그녀의 손끝에서 다른 방식으로 반향 했다.
정오 무렵, 린은 엘레나 박사를 처음 만났다. 러시아계 미국인인 엘레나는 중년의 나이에도 부드러운 청록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복잡한 복합수 수열을 검토하던 중이었고, 린이 들어서자 고개를 들어 따뜻한 미소로 인사했다.
"당신이 린이군요. 무차원 위상 연구자."
린은 잠시 놀랐다. 그 용어는 그녀가 공식 논문이나 이메일에서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것이었다.
"그건 공식적으론 아니에요. 논문에는 아직 쓰지 않았죠."
엘레나는 린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의 걸음걸이에는 독특한 리듬이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파동을 따라 움직이는 듯했다.
"논문은 느리죠. 감각은 훨씬 빠르니까. 당신의 연구 접근법이 처음부터 흥미로웠어요. 마치 누군가가 바깥에서 안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