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공명

by 늘람


말없이 오래 바라보던 사람이 있었다.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떨림이 있었다.
같은 진동수로 울리기 시작하는 두 개의 현.


그것을 공명이라 부른다.

홀로 울리는 공명은 없다.
누군가가 먼저 진동하고,
다른 누군가가 그 진동에 응답한다.


진동수가 정확히 일치할 때,
진폭은 배가 되고 에너지는 증폭된다.


관계도 그렇다.
존재도 그렇다.


늦은 밤 창밖으로 들리는 피아노 소리.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는 멜로디.
모르는 사람과의 공명.


막힌 벽을 뚫고 마음이 진동한다.
소리가 소리를 부르듯,
마음이 마음을 부른다.


공명은 선택이 아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물리 법칙이다.


모든 진동이 공명을 만들지는 않는다.


주파수가 어긋날 때 두 파동은 서로를 상쇄시킨다.
보강 간섭과 상쇄 간섭.


같은 공간에 있어도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그들과의 공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공명에는 정밀해야 한다.
천천히,
서로의 고유 진동수를 찾아가는 시간.


피아노 조율사처럼
세심하게 음을 맞춰가는 기다림.


0.1 헤르츠의 차이도 공명을 방해한다.


어떤 진동은 찰나에 공명하고,
어떤 진동은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맞춰진다.


관계는 공진 주파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오랜 침묵 후에 오는 말들.
공명하던 두 현이 갑자기 끊어지는 소리.
진동은 계속되지만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다른 진동수로 울고 있다.


공명의 부재.
그것도 관계다.


불협화음조차 음악의 일부다.
완벽한 협화음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복잡하고 깊은 울림.
때로는 어긋나야 더 아름다운 화음을 찾는다.

디스토션도 화음이다.


한참이 지나 도착한 짧은 편지.
"그때 내가 틀렸어."
이전과는 다른 주파수로의 만남.
상처를 겪고 난 후의 새로운 공진점.


더 조심스럽지만 더 깊이 울리는 소리.

손상된 악기는 때로 더 아름다운 음색을 낸다.


아침마다 내리는 커피 한 잔.
컵을 건네주는 그 순간의 미세한 떨림.
말로 하지 않는 사랑의 증폭.


반복되는 진동이 하루를 떠받치는 기본 주파수가 된다.

사랑은 기본음이다.
모든 관계의 배음이 여기서 태어난다.


지하철 안,
날카로운 목소리들.
핸드폰 스피커에서 새어 나오는 거친 소음.


원치 않는 공명.
불쾌한 잔향은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닌다.


감쇠되지 않는 진동들.

어떤 진동에 노출될지,
우리는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진동에 공명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선택적 공명.
그것이 삶의 기술이다.


가장 오래된 친구는 나와 완전히 다르다.


나는 낮고 깊은 베이스, 그는 높고 경쾌한 트레블.
공명할 수 없지만,
하모니를 만든다.


그의 경쾌함이 내 저음에 생기를 더하고,
내 깊이가 그의 고음에 무게를 준다.


옥타브가 다른, 같은 음처럼.
다르지만 같은 진동을 한다.


하모니는 동일함이 아니다.
다름에서 태어나는 조화다.


내 말에 미세하게 반응하는 사람.


눈썹의 작은 움직임, 고개의 미묘한 기울임.
그 작은 신호들이 내 소리를 증폭시킨다.


완벽하게 설계된 공명실 안의 음악처럼
또렷하고 풍성해진다.


어떤 사람 앞에서 내 목소리는 사라진다.


아무리 말해도 없는 메아리.
소리를 죽이는 무향실.
그곳에서는 침묵만이 진실이다.


침묵도 공명이다.
들리지 않는 소리의 공명.


가족의 걱정, 친구의 기대, 동료의 부탁.
서로 다른 주파수들이 내 안에서 만난다.


긍정적 간섭은 내 존재를 증폭시키고,
부정적 간섭은 모든 것을 상쇄한다.


그곳에 나는 없다.


그때 나는 모든 진동을 멈춘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내 안의 고유 진동수를 다시 찾는다.


고요 속에서 들리는 나만의 기본음을.

그것이 나다.


헤어진 사람들의 진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공명했던 기억이 잔향으로 남아,
예상치 못한 순간 다시 울린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노래,
익숙한 향수 냄새,
비슷한 웃음소리.
갑자기 되살아나는 공명의 기억들.

잔향은 원음보다 오래 남는다.


좋았던 진동은 따뜻한 배음으로,
아팠던 진동은 쓰라린 불협화음으로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폭은 작아지지만
진동수는 변하지 않는다.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진동하는 소리들.

기억은 울림통이다.


과거의 모든 공명이 그 안에서 메아리친다.

혼자 있을 때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나눈 공명의 기억이 나를 채운다.
그들의 진동이 내 안에서 여전히 울린다.
그 모든 울림의 합성이 나다.


존재는 공명이다.
타인 없이는 나도 없다.


모든 관계는 공명이다.
서로의 진동에 응답하며,
더 크고 깊은 울림을 만들어가는 일. 삶.


때로는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고,
때로는 어긋나며 잡음을 만든다.
때로는 상쇄되어 침묵을 남기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이 삶.


홀로는 낼 수 없는 소리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


오늘도 누군가의 진동이 내게 온다.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떨림을 보낸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의 주파수.
서로 다른 진동들이 만나 만드는 새로운 울림.


우리는 악기다.
함께 연주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음악.


관계는 공명이다.
공명은 존재이고, 존재는 울림이다.


그 울림 속에서 나는 나의 소리를 찾아가며 오늘도 살아간다.

혼자서는 들을 수 없는 나의 진짜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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