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질량

by 늘람

존재는 타인의 나에 대한 배려다.


존재가 무엇일까.

나의 의지일까.

나는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이 세상에 나의 질량이 있을까.


수많은 날들 속에서 항상 던지던 질문.

그리고, 얻은 답.


존재는 타인의 나에 대한 배려다.


누군가 불러 주었기에 ‘꽃’이 되었듯

누군가 불러준 나의 이름과

누군가 토닥여준 내 어깨 위의 손길과

누군가 내게 던진 따뜻한 말 한마디가

이 세상에 나를 존재시킨다.


어쩌면 나는 내가 존재하기 전에 이미

타인의 마음속에 먼저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나를 관측한 이의 감정의 밀도

나를 품은 마음의 중력.

나의 존재를 이끌어 내는 인식이 모여

나의 질량을 만든다.


질량이 있는 물체는 서로에게 당기는 힘을 작용한다.

만유인력.


타인의 배려는 감정의 중력이 된다.

배려는 보이지 않는 인력이 되어

이곳의 나를 만든다.


누군가,

마음속에서 나를 놓아 버리는 것은,

우주의 중심에서 나를 떼어 놓는 일이다.

궤도를 이탈한 위성처럼,

나는 무중력의 외로움 속에 부유하게 된다.


제제의 그 말.

"그날 나는 아버지를 죽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이들에게는

존재했으나

제제에게 그 존재는 지워졌다.

질량도, 중력도, 감정도, 관계마저도

사라졌다.


존재는

관계와 배려 속에서만

살아 숨 쉰다.


존재의 질량은 균일하지 않다.


어떤 이는 스쳐 가듯 내 인생을 지나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언어의 작은 조각으로

내 생의 방향을 바꾼다.


어떤 존재는 가볍고, 어떤 존재는 무겁다.

무거운 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은 힘으로,

나를 계속 끌어당긴다.


나는 타인에게 얼마나 무거운 존재일까.

나의 배려는 타인에게 얼마의 크기로 다가갈까.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처절하게 애쓰는 동안


문득 나에게 던지는 질문들.

나에게 나는 존재할까.

나는 나를 배려할까.

나의 질량은 나를,

얼마의 크기로 당기며 살아왔을까.


내가 나를 지켜보지 않으면,

나조차 나를 잊는다.


거울 속 내 얼굴이 낯설어진 날들.

내 목소리가 남의 것으로 들리는 순간들.

'존재의 부재'


존재의 질량은 관계에서 결정된다.

내 안에서 나를 존재시키는 건 나다.


나는 나를 기억해야 한다.

아팠던 순간을,

울었던 날들을,

누군가의 말에 흔들렸던 감정과,

그 작고 사소한 떨림마저도.

그것이 나를 ‘나’로 만든다.


잊지 않는 것.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거절하지 않고,

밀어내지 않고,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

‘나’를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누군가에게서 배려를 받는다는 것은,

나의 질량이 누군가의 우주에 휘어짐을 만드는 것이다.


나의 말이,

나의 침묵이,

나의 존재가

하나의 힘으로 작용하는 그것.


배려가 없으면, 모든 것은 소멸한다.

존재의 질량이 희미해지고,

관계의 중력이 끊어지고,

기억의 고리가 풀린다.


소멸은 ‘죽음’이다.

존재는 기억이다.

기억은 배려고,

배려는 중력이다.


우리는 서로의 질량을 나누며 살아가는 중이다.

더 오래 살아남은 기억은, 더 무거운 질량을 지녔다는 증거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

그가 나였다는 것을 잊지 않는 일,

내가 그를 품었던 마음을 배신하지 않는 일이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선택이다.


나는 존재한다.

너의 마음에 내가 남아 있는 한.

너도 존재한다.

내가 아직 너를 기억하는 한.


존재는 타인의 마음에서 비로소 '무게'를 얻는다.

존재는, 그렇게 서로에게 완성된다.


오늘도 나는 나를 존재케 해 준 이 세상 모든 이들의 배려와

나를 내 안에 존재케 해 준 나의 배려에 감사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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