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이렇게 쓰기로 했습니다
브런치스토리를 처음 알게 된 건 몇 년 전이다.
이 플랫폼에는 참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었다.
섬세한 감정을 고요히 펼치는 사람,
사소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
조용히 생각을 밀어 올리는 사람.
나는 그 글들이 좋았다.
그리고, 그 글을 쓰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브런치스토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무렵, 이미 다양한 글들을 읽고 있었다.
누군가의 글이 좋았고, 그 글을 쓰는 사람이 멋져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 글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글은 결국 고유한 진동이고, 그 사람의 결이라고 생각했다.
다정하거나 단단하거나 시적인 문장들,
모두 좋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결이었고,
나는 언젠가 나만의 결로 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글을 잘 쓰느냐’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애초에 글을 올릴 수 없었다.
내 마음은 글에 대해 순수하지 못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틀리고 싶지 않은 마음, 옳아야 한다는 부담감.
그것들이 마치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이 되어 내 안의 균형을 허물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쓰면서도 어딘가에서는 '잘 보여야 한다'는 마음을 떨쳐내지 못했다.
누가 읽을까, 어떤 반응일까.
좋아요는 몇 개쯤 될까.
사람들이 읽고 뭐라고 할까.
이런 생각들 사이에서 글은 '내가 쓰고 싶은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말'로 바뀌어 갔다.
그러다 보니 내가 꺼내고 싶은 말은 꺼내지 못했고,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조차 '틀리면 안 된다'는 이상한 압박에 갇혀 있었다.
결국 초안만을 작성하다 작가 신청조차 하지 않고, 글에서 멀어졌다.
생각은 많았지만, 그 어떤 생각도 글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다.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싶었지만, 여전히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냥 쓰고 싶어졌다.
잘 보이고 싶어서도 아니고,
누군가 읽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이,
그저,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고, 말한다는 것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아주 오래 전 나에게는 두 가지 소원이 있었다.
죽을 때 책에 깔려 죽고 싶다는 소원 하나 — 그만큼 책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뜻과
그만큼 책과 가까이 지내고 싶었다는 마음 — 와,
언젠가는 물리학으로 삶을 말하는 책을 쓰고 싶다는 소원.
나는 오랫동안 물리학과 가까이 살았고,
삶의 많은 순간들을 그 언어로 해석해왔다.
때로는 감정의 기복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어떤 초기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카오스적 시스템으로 느껴졌고,
때로는 인간관계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변하는 것이
특정한 관측자 기준에서 시간과 공간이 달라지는 상대성이론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그리고 무심코 떠오른 생각 하나가 양자 중첩처럼 동시에 여러 가능성을 내포한 상태로 머무르다가,
어느 한 지점을 선택함으로써 현실이 결정된다는 느낌을 받으며 감동하기도 했다.
그런 물리학적 사고는 내 일상을 설명해주는 도구이자,
내 마음을 다루는 방식이기도 했다.
감정은 보이지 않지만,
그 흐름에는 심리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경향성과 패턴이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내 안의 나를 관찰하는 법을 배워갔다.
누구보다 철저히 나를 관측하는 이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말을 조금은 진지하게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나는 조심스럽게 글을 쓰기 시작한다.
틀릴 수도 있고,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쓰고,
또 자체로 행복하다.
이 글을 쓰는 순간의 나는 누구에게도 온전한 ‘나’가 될 수 있기에 또 감사하다.
예전의 나는
무엇을 말하든 한 발 물러나 있었고,
의견을 말할 때조차도
그것이 과연 '괜찮은 생각'인지
계속해서 나 자신을 검열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문장은 쓰기도 전에 망설여졌고,
어떤 감정은 꺼내기도 전에 조용히 사라졌다.
지금은 '그냥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고,
그 말 뒤에 아무런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도 문장을 쓴다.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도,
누군가의 공감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문장을 쓰는 이 순간,
내 안에서 고요히 흔들리고 있는 말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온전한 ‘나’가 되기 위해서.
브런치라는 공간은
그 조용한 고백을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일 지 모른다.
편집도, 전략도, 설명도 없이
그냥 '나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라고 쓸 수 있는 곳.
나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쓰는 일은 여전히 망설임으로 시작되고,
매번 두려움과 함께 손끝에 걸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그 문장을 통과하기로 한다.
조금은 떨리고, 조금은 서툴더라도
이제는, 그냥 쓰기로 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이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나’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