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자리보다 더 밑에 있는 아랫자리,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가치 있는 2 등 따윈 없다고, 어떤 스포츠 선수들은 말했어요.
못 받을 메달을 받은 동메달이나, 결국 따낸 금메달.
사람들은 이에 열광하지만, “가치 있는 2등 따윈 없다.” 며 은메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아요.
금메달을 못 땄다고 아쉬워하기나 하면서.
어느 곳이나 2등은 그런 자리라고. 은메달의 자리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얘기예요.
맞는 말이죠. 이도 저도 아닌 자리. 갈 곳이 없어요.
알게 모르게 숨어서 스스로를 한심해하거나, 금메달이나 동메달을 부러워하기도 한답디다.
그렇지만,
그것도 메달을 받아본 자의 이야기입니다.
출전했지만 결과를 남기지 못한 이들,
4등, 5등, 혹은 본선 진출조차 못한 이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이름 없는 자리보다 더 아래에
나는 그 자리에, 그 자리에서도 더 아래에 있어요.
나의 불행은 순위권에도, 제도권에도 들지 못하고, 공감도, 동조도 받지 못합니다.
극적이지 않아 문학에 쓰이지도 못하고, 매체에서는 더한 사람이 나오죠.
그래서 더 조용하고, 더 외롭습니다.
“그 오랜 시간 꿈을 놓지 않고 글을 쓰는 네가 대단해 보여.”라는 말은 가끔 들었어요.
하지만 휘발되는 말뿐, 이는 현실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합니다.
돈이 되지도 않고, 밥이 되지도 않아요.
한 글자 값이 1원도, 1전도, 1냥도 안 되는 건지,
여전히 버스비를 남기기 위해 밥을 굶어야 했으니까요.
그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로 남을 뿐이었습니다.
이 자리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은메달은 아쉬움이라도 남기죠.
사람들의 대우가 그럴지언정, 밥이라도 나오죠.
하지만 그 아래의 순위에게는 이마저도 없어요.
이름도, 이야기의 자리도.
기록은 남지만 기억은 남지 않잖아요.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우울이가 곁에 오고, 처음 치료를 시작했을 때 한동안 한 글자도 쓰지 못했어요.
우울이가 와서 못 쓰게 된 건지, 못 쓰게 돼서 우울이가 온 건지, 인과관계가 있는지, 그저 선후관계인지는 알 수가 없어요.
운동은 잘하면 메달을 줍니다.
일생동안 단 한 번도 메달을 받아보지 못한 운동선수는 없죠.
그들은 기록을 남기고, 박수를 받아요.
저는 인생도 그렇다고 믿고 싶었어요.
열심히 달리면, 언젠가는 메달을 받을 수 있다고.
결과가 전부는 아니라고,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현실은 달라요. 숨이 턱에 닿게 달려도,
불행은 등 뒤에 바짝 붙어 쫓아옵니다.
덜 불행하기 위해 몸을 움츠리고, 더 불행하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아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불행은 늘 가까이에 있어요.
기쁨의 순간에도, 성취의 순간에도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오죠.
그래서 나는 양가적 감정을 자주 느꼈습니다.
기쁘면서도 불안하고, 감사하면서도 원망스러웠어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감정.
너무나 그저 그런 평범한 불행.
그 평범함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따금씩은 그 평범함을 원망합니다.
극적이지 않아서,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아서.
꿈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이루어도 허무하고, 못 이루면 흔적도 없다.
그토록 달려온 시간은 남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나에게조차,
가끔은 아무 의미도 없이 느껴질 때가 많더라고요.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불행은 늘 옆에 있어요.
기쁨은 지나갔는데, 불행은 남아요.
버텨도, 달려도, 뛰어도, 걸어도.
그건 사라지지 않고 말해지지도 않아요.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습니다.
기록되지 않고, 기억되고 있지도 않죠.
누구도 나를 기다리지 않고, 누구도 묻지 않아요.
그저 살아 있다는 이유로 하루를 견디고,
그 하루가 또 지나갑니다.
글을 써도 아무도 읽지 않아요.
쓴다는 행위조차 이젠 나를 구하지 않아요.
그저 습관처럼, 그저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적습니다.
이 자리는 이름도 없고, 남는 것도 없어요.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자리.
그게 내가 있는 곳입니다.
그저 나는 여기 있어요.
글을 써도 남지 않아요.
말을 해도 닿지 않아요.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에요.
그저 존재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