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당장 처지가 뒤바뀌어 여기 없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은
몇 년간 드라마 쓰는 것뿐만 아니라,
보는 것조차 싫었었어요.
서사 있는 영상이라면 꼴도 보기 싫었거든요.
오랜만에 소현경 작가의 <두 번째 스무 살>을 정주행 했어요.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몇 년 만, 아주 오랜만이어서, 마음이 시그널을 보내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해버렸어요. 그 기분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화면을 응시했습니다.
<두 번째 스무 살>의 주인공은 부모도 없이 조모와만 살며 18살에 혼전임신으로 애엄마가 되고 아들이 스무 살이 된 후에 애 자신의 청춘을 뒤늦게 살아보려 하는 인물입니다.
서른여덟의 그 여자를 서른둘에 보며,
그 여자에게 동화되어 따로 담아둘 정도로 좋아했지만 그건 주인공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몇 년이 가도 마찬가지였는데.....
마흔이 되어보니 주변인들의 대사가 다시 들려요.
특히나 저에게 [마흔]은
늘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상의 나이어서
더 많은 생각을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흔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건 꿈을 향해 밤새며 돌진했던 대학시절을 포함한 20대 때 에요.
저는 글쓰기가 전공입니다.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어요. 전공 강의를 듣기 시작할 때, 중학생 때부터 꿈이던 작가의 길을 이제 시작했으니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바치면 어떤 이름이든 얻지 않겠나,라고 생각했었어요. 게다가 이때 아르퀴르 랭보와 이상을 정말 동경하고 좋아했었습니다. 내가 천재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태어나 산만큼을 바치면 작은 무언가라도 되어있지 않을까. 하고요.
죽고 싶어 했던 나이,
내가 상상하던 그런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살고 있는 현재.
고장이 나도 단단히 나 있지만.
어쨌든 살아있어요.
서사를 만든 작가도 되지 못했고,
생각하지도 못한 직업을 생업으로 하고 있고,
슬프게 생각하는 건 성향인만 알았었는데
정식으로 이름이 등록되고 치료제가 존재하는 병이었고, 나는 중증으로 앓고 있는 거였고.
일기도 잘 쓰지 않았던 제가
에세이를, 그것도 연재를 할 거라고는 몰랐는데.
첫 번째 우울증 치료를 할 무렵만 해도
다시는 글은 못 쓰게 될 것 같았는데.
어느새 많이 달라져 있네요.
우울이가 시도 때도 없이 제게서 들락날락하는지,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결재하는데 바코드 찍는 소리에도 눈물이 나요. 그래서 사람이 계산해 주는 가게를 못 가요. 무인매장이나 셀프결재기로 계산할 수 있는 곳만 다니고, 모자와, 안경, 마스크는 거의 하고 다녀요. 딱히 어디 나가지도 않지만,.....
또, 인터넷으로 주문하면서 꾸역꾸역 살아있어요.
가끔은 진짜 살아있나, 현실감이 안 나서 칼로 몸의 어딘가를 그어봅니다. 여전히 피가 나요.
살아있는 거죠.
이제는 인조손톱을 붙이지 않아요.
하지만 여전히 손톱은 퇴적층처럼 가로로 찢어지게 뭔가가 모자라요. 그럼에도 그 얇은 손톱이 부러지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아픕니다. 그 손톱으로 정수기에 온수를 받아 컵을 잡으면 너무 뜨거워서 순간, 놓거든요. 빨갛게 데어있는 걸 보면서 생각해요.
살아있구나.
주인공이 왜 대학에 다니고 있는지,
이혼 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과거 자신은 어땠는지,
자신을 들여다보는 걸 보면서
저도 생각합니다.
순간순간 왜 사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과거의 나는 어땠는지
지금 느끼는 감정이 뭔지.
솔직히 [왜 살아야 하는지] 말고는
딱히 별 생각이 없지만요.
여전히 몇 년이나 가르친 아이들 수능 볼 때까지만,
지금 맡은 아이 중간고사 볼 때까지만,
이 아이가 나를 버리기 전까지만......
하면서 계속 유예기간을 두며 매일을 맞고 있거든요.
별생각 없이.
처음 치료를 받을 때 익힌,
오늘을, 한 주를, 한 달을, 몇 달을 사는 방법이었는데.
뭐,
나쁘지만은 않아요.
없어서 보이는 것들이 생겼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처럼 '나'에게 관심 갖고,
'나'에게 골몰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매일,
세상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있는지 자체는 알 수 없지만
달라지지 않는 상태로 뭔가 달라지고 있어요.
지금이야말로 어떤 변화 지점인 것 같아요.
완전한 "분기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 당장 처지가 뒤바뀌어
여기 없을지도 모르지만.....
뭐.......
어쨌든.....,
지금 당장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