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존중받을 가치를 인정받자고 아무리 들어도
진료실에서 선생님은 내가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인정받자고 하셨어요. 모든 사람은 그럴 만하고, 나도 마땅히 그런데 적절한 시기에 그러지 못했을 뿐 지금이라도 그걸 메꾸면 된다고.
하지만 이 부분은 동의할 수가 없었어요.
분명 이전에도, 재치료 시작 이후로도 선생님께 꽤 주기적으로, 못해도 두, 세 번은 들은 것 같은데 여전히 나는 내 모습이 조금이라도 삐져나오거나 드러나면 사람들이 당황하거나 싫어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 반응은 너무 익숙해서,
너무 빨리, 멀리까지 예측이 되고,
어느새 나는 반사적으로 학습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텔레 마케터처럼 잔뜩 꾸며낸 목소리로, 더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해요.
가장 가까운 날엔 이전 직장상사가 그랬어요.
그는 나에게 싫어하는 게 아니라고 했고,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도 알아요.
그 순간, 부정적인 감정과 극단적인 감정이 뒤섞여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렸어요.
패턴은 반복되잖아요.
살면서 학습된 게 있고, 적지 않은 시간 병원에 다니며 대체방법도 배웠고, 이성적 판단도 하는데...
하지만 감정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걸요...
그 괴리감이 너무 커서 버티는 게 참 고되요.
정말 나는 이상한 것 같아요.
머릿속에서 우울했던 과거가 반복돼요.
특히 거부당했던 기억들 중 같은 워딩이 반복되면, 그 감정은 더 강하게 되살아나요.
20년이 지났으니 다른 기억으로 덮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상처 줬던 이와 같은 이름의, 동명이인과의 마주침을 피하지 않아 봤어요. 하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실패조차 제어하기 힘들 만큼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들었어요.
나는 언제까지 매여있어야 할까 싶어서요.
어떤 밤, 비가 와서 기분이 좋았어요.
'김치전에 막걸리' 얘기를 하며 배우자와 대화하던 중, 그가 절 타박했어요.
그는 “너는 매번 뭐만 하면 술이냐”라고. 김치전에 막걸리, 그거 그냥 플라세보 효과라고
그 말에 순식간에 우울해졌습니다.
그건 단지 술에 대한 말이 아니었어요.
원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온 방식인데.
내가 지나쳐 온 시간들이
한순간에 틀렸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머리로는 알아요.
그 방식이 괜찮은 건 아니란 걸.
하지만 그 순간엔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것 같았어요.
옳지 않아도, 어쨌든 나는 그걸로 마음을 풀고 버틴 기간이 오래인데.
네가 뭔데 그 방식을 조롱하고 핀잔을 줘.
마음 안에서 소리를 지르다가..
이내 시무룩해지고 우울해졌습니다.
억울하고, 서러웠어요.
이렇게 까지 해서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우울에 잠겨 또 생각했습니다.
똑같은 질문을,
몇 천 번째, 몇 만 번째 하는 건지.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말.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믿어지지 않아요.
그런 게 어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