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명랑함을 연기하는 기간

by 는개


또 명절입니다.

저에게 명절은 명랑 쾌활함을 연기하는 기간이에요.


결혼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우리를 만들었습니다.

법적절차까지 모두 끝내고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공동체가 생겨났어요. 주변도 그런 과정을 거쳤어요. 새로운 호칭을 갖게 되니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이들이 생겨났는데. 개혼이었던 우리 집에서는 내 부모님도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던 터라 일단 약을 쏟아부어서 감정을 누르고 이성적인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 익혀둔 대처법들을 머릿속에 되새기연서.


그에 적응하는 와중 우울증은 더 심해졌는지 감정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습니다. 재발한 우울증을 망연히 바라보며 재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잔잔하니 맑은 건 바라지도 않으니 이 휘몰아치는 풍랑만 잠잠해지면 안 될까. 매일 태풍만 일으키며 살 건 없잖아,









말 한마디 오가지 않는 본가,

사이가 좋지 않은 여동생은 내 방문 일정을 피해서 오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남동생은 딱히 내가 온다고 해서, 매형이 온다고 해서 자기 스케줄을 조정해 그 시간에 집에 있는 노력 같은 건 하지 않아요.


내 우울증의 상당 부분의 지분을 가진 집,

그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아빠.

우울삽화가 저를 흔들어놓을 때면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있을 때가 사람 사는 집 같다며 웃는 아빠를, 다툼 없이 늘 평화롭기만을 바라는 엄마를 외면하지 못하고 매번 밝게 웃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냅니다.


그럴 걸 생각하니 그 생각만으로도 한숨이 나옵니다. 결혼을 시켜도 철딱서니 없어 등짝을 맞는, 철없고 명랑한 딸로 쓸데없는 말만 조잘거리게 될 거예요.


배우자의 본가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만 둘에, 하루에 열 마디도 하지 않으시는 무뚝뚝한 시아버님을 남편으로 둔 시어머님은 결혼하기 전부터 내가 어머님~~ 하고 부르는 하이톤 목소리를 정말 좋아하셨어요. 주변에 물어보니 아들만 있는 집 시어머니들이 딸 같은 며느리를 바라서 그런다는 말이 많더라고요. 아니 그렇다 해도 이 집은 개혼도 아닌데 왜...? 싶었어요 알고 보니 저보다 나이가 많은 시동생이 연상과 결혼해서 실질적으로 가장 어린 사람이 저였더라고요. 그런지 좀 귀엽게 보는 듯했습니다.


솔, 톤의 목소리와 막내아들보다 나이가 더 어린 며느리. 올 때 되면 창가에 서서 어서 오라고 해주시는 어머님이 그리 좋아하시는데 외면이 될 리가. 시어머니 앞에서도 명랑 쾌활한 며느리를 연기하다 오겠죠...


억누르고 억누르며 살고 있는 극강의 엔프피. 저는 점점 변해가고 있습니다.


내가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걸 아는 정말 소수의 사람 외에 관계 맺은 새로운 사람이 없는 지금, 내 주변에는 나를 엔프피로 보는 사람은 없어요. 밝은 모습을 너무 많이 잃어서.


시간들이 지나면 저는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요. 몇 년간 오늘만 살며 미래를 그려본 적은 없었는데... 처음으로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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