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나는 나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다. 내겐 별 감흥이 없는데 타인이 이쁘다고 하거나 좋다고 하면, 나도 어느샌가 그게 이쁘고 좋다고 말하고 있다. 특별히 나는 안 좋은데, 하고 말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아빠와 동생에게도 내가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옷을 더 많이 입는지, 어떤 음식은 잘 안 먹는지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런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아도 가족이란 관계는 지금껏 어찌어찌 잘 유지되어 왔다.
그렇지만 나도 대놓고 내 취향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이건 싫다, 이건 좋고.’라고 분명한 말이 나가는 사람이.
엊그제 찾아내 푹 빠진 아티스트 ‘새소년’의 영상을 보내며 멋있지 않냐, 너무 좋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녀들이 ‘별론데.”라고 말해도 상처 받지 않는 것이다. 나는 맞고 그녀들은 아니어도 괘념치 않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내 취향을,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그녀들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건 왜 일까. 우리가 오래된, 서로에게 매우 익숙한 사이라서 일까.
그들은 내가 지금까지 어떤 옷을 좋아했는지 알고 있다. 어떤 술을 잘 마셨는지, 어떤 말을 쓰는 걸 좋아했는지, 어떤 남자에게 빠졌는지 알고 있다. 고기는 갑자기 왜 안 먹었는지, 놀이기구는 왜 안 탔는지, 색조 화장을 어떻게 했는지, 셀카를 찍을 땐 주로 어느 방향을 찍었는지 모두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보낸 아티스트 영상의 썸네일을 보곤 “이거 너 아냐?”라고 답해주는 것도 너무 좋고, 어렸을 때 더 놀았어야 했는지 지금 나이에도 너무 놀고 싶다는 내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하고 오는 답장도 너무 좋은 것이다.
그녀들이 나에 대해, 나의 지난 과거와 나의 취향을 모두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행복한 마음이 일었다. 내가 지금 어디서 일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아빠의 딸인 나에겐 매우 큰 일이고 감동적인 일이다.
내 자신이 솔직해지는 사람 두 명이 있으니 세상을 다 가진 듯 훨훨 날고 싶은 어느 화창한 봄 날이었다. (봄이라서 좀 감성적이 되는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