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 청소 노동요로 뭘 틀까 고민하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한 ‘90년대 드라마 OST 모음’을 재생시켰다. 1990년에 국민학생이 되었고 99년에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를 위한 리스트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청소 내내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을 내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이 모든 가사를 외우고 있는 거지 다음 가사가 너무 잘 알겠어서 신기하고 놀랐다. 몇 년 간 듣지도 않았던 노래인데. 가만, 요즘 나오는 노래 중 아는 가사가 있던가. '넥스트- 레벨' 요 정도일까. 완곡 가능한 것은 없다.
어렸을 땐 가사를 교과서 외우듯 들고 다니면서 봤다. 테이프 사서 마이마이에 테이프를 꽂으면, 가사 적힌 종이까지 빼서 따라 부르고 또 불렀다. 나중엔 접힌 부분을 따라 가사지가 찢어진다. 가사의 양이 지인짜 많은 곡, 예를 들어 랩 장르도 다 따라 부를 수 있었다. 허니패밀리의 ‘남자 이야기’나 스파이스 걸스의 ‘워너비’ 같은 것도.
가사처럼 그때의 추억들도 다 외워 뒀더라. 친구랑 학교 매점 가서 사 먹던 자두맛 사탕 같은 것.
내 마음을 가장 흔드는 곡은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이다. 노래방 가면 엄마가 자주 불렀던 곡이다. 음치이자 박치인 아빠가 마이크를 자꾸 엄마에게 넘기면 엄마는 항상 이 노래를 불렀다. 엄마의 노래 실력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지만 늘 자신감에 차 부르기에 멋있었다.
얼마 전 길을 지나다 빈 상가를 하나 보고 월세 가격이 궁금하여 유리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었다. 통화 연결음 대신에 내가 아는 패티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겨울에 듣는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은 마음을 훅치고 눈물까지 핑 돌게 했다. 전화를 받으신 선생님은 목소리로 보아 엄마 뻘 정도 될 것 같았다. 아파서 상가 못 가본 지 오래됐다 하셨는데 건강하시면 좋겠다 생각했다.
훌라를 배운 지 4년이 됐다. 예전만큼 열정이 있는지, 재능이 있는지 모르겠고, 남들은 나보다 훨씬 앞서 나가는 것 같아 의욕 없는 날들을 보냈다. 집에서 스텝 한 발짝 떼기가 어려웠다. 에이, 해서 뭐해, 나 실은 그렇게까지 훌라가 좋은 게 아니었나 봐 그런 마음까지 들었었다.
그런데 어느 늦은 밤, 내 플레이 리스트에선 너무 오랜만에 조쉬타토피의 ‘멜리아’가 흘러나왔다. 가늘게 떨릴 만큼 좋아했던 노래다. 그저 춤추는 것만으로 기뻤을 때 들었던 곡.
나는 그랬었지. 몸을 움직이면 살아 있는 거 같아서 춤을 배웠지. 스텝 하나 배워오면 그저 신났고, 지난번 보다 조금 더 나아졌다 들으면 뛸 듯 행복하고, 한 곡 다 출 수 있게 되면 세상을 다 가진 거 같이 마음이 부자였지. 그런데 그 새 다른 마음이 끼어들었다. 잘 추고 싶어서, 남보다 더 잘 추고 싶어서,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마음이 괴로웠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잘 추고 예쁜 것 같아서 지옥이 되었고.
오랜만의 멜리아는 내가 얼마나 훌라를 좋아하는지 알려줬다. 가사의 뜻은 정확히 모르지만 가수의 목소리가 주는 울림과 감정 때문에 같이 감동받게 되는 것. 혁오가 부른 ‘월량대표아적심’처럼.
한 달 만에 그만두었던 여러 가지 춤들을 생각하면 4년 훌라 한 거 너무 대단하지 않나요, 난 그렇게 생각해.
#1일1행복챌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