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속 꿈꾸는 사람이고 싶다

꿈의 변화_중학교 시절부터 살펴볼까요?

by 피츠로이 Fitzroy

중학교 때 내 꿈은 영어 선생님이 나랑 사귀어 주는 거였다. 몰래. 3년 내내 영어를 배우면서 3시간도 그분이랑 수업 외 딴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지만 졸업식 당일까지 '실은 네가 좋았다' 고백을 받지 않을까 두근거렸다.

그 시절 새벽 3시, 4시까지 라디오를 듣느라 잠을 설치고, 귀가 후 다들 공부할 시간에 케이블을 틀어놓고 팝 뮤직비디오를 열혈 시청한 탓이라고 슬쩍 핑계 대고 싶다. (난 뭔가 정상 중학생이 아니었다. 어른 생각을 하는 중학생이랄까 하하)

고등학교 때 내 꿈은 공부를 하지 않는 거였다. 나는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공부에 취미나 소질이 절대 없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면서 지겹도록 생각했다. 제발 공부 좀 하지 않게 해 주세요. 밤 열 두시 학교를 파하고, 새벽 두 시까지 독서실에서 졸다가, 독서실 아저씨가 태워주는 봉고차를 혼자 쓸쓸히 타고 집 근처까지 오면 조금 전까지 방에서 졸다가 나를 마중 나온 엄마가 저 멀리 보였다. 이게 서로에게 무슨 끔찍한 피해일까 싶었다.
공기청정기가 내뱉는 소리만 들리는 아무도 없는 깜깜한 독서실, 깨어있는지 의심스러운 몇몇의 학생이 앉아 있는 독서실 봉고차, 추운 밤공기를 가르고 집 앞에 어슴프레 서있는 엄마, 이 세 가지가 너무 슬펐다.

그런데 나는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의, 가고 싶은 학과에 떡하니 붙었다. 이게 무슨 모순인가.

대학교 때 내 꿈은 광고대행사에서 입사하는 거였다. 좋은 광고 대행사, 나쁜 광고 대행사 그런 건 상관없었다.
내 미래는 광고 대행사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자 친구와의 실연, 가족을 잃은 아픔 등 내게 닥친 불행을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낮에 친구랑 동동주를 마셔도 저녁에 있는 스터디 모임에는 꼭 갔다. 그런데 나는 광고 대행사에 취직하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모순인가.

사회 초년생 시절 내 꿈은 여행이었다. 그중 인도가 가장 강력하게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갔다.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그리고 나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것을 동경하게 되었고, 글 쓰는 걸 좋아하게 되었고, 음악 듣는 걸 좋아하게 되었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고, 언어 공부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고, 맛있는 것을 먹는 걸 좋아하게 되었고, 풍부한 감성을 얻었다. 처음으로 꿈이 실현되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얻었다.

지금의 내 꿈은 30살에 내가 저자인 책을 내는 것이다. 글재주가 있지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내 30년 생활에 대한 에세이 같은 걸 내보고 싶다. 출판사를 통해 제대로 발간되지 못할 수 도 있다. 그냥 내가 프린트물로 출력해 실 같은 걸로 꽁꽁 엮어 '책'이라며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두 명은 봐주겠다고 약속했다. 진주랑, 제이슨 형이랑. 그 말에 용기를 얻고 너무 고마워져서 그들이 그냥 내게 얻는 게 아닌 서점에서 가 사서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어제 생각한 나의 생애 마지막 꿈은 내 가족들에게 바치는 여행 책을 내고 죽는 것이다. 늘그막에 내 반려자나, 반려자가 없다면 그때 내 옆에 있는 사람이나 아니면 혼자라도 상관없이 온 세계를 누비며 여행을 하고 싶다. 호위 호식하는 여행이 아닌 치열하고 성실한 여행을. 그리고 내가 느낀 그 세계를 책에 남기고 싶다. 책 첫 페이지에 내 가족들과 내 후손들에게 바친다고 쓰겠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었음이 증명되기도 하고 그들이 내 책을 보며 우리 외할머니 혹은 우리 몇 대 조상이라며 뿌듯해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 책을 읽으며 나도 당장 여행하고 싶다고 느끼는 몇몇의 사람이 있었으면 더 행복 해질 테고.

나는 참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라고 생각해왔지만(쓸데없는 게 대부분이다) 그게 꿈이 많은 사람이다 라고도 해석되면 좋겠다. 지금까지 실현된 꿈도 있고 실현되지 못한 꿈도 있지만 꿈의 설계가 애초에 잘 못 되었더라도 실현된 편이 훨씬 나은 것 같다. 또 앞으로 어떤 다른 꿈으로 변화될지 모르겠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되어 주니까 나는 계속 꿈꾸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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