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노라 잊었노라

찬란했던 연애가 끝나고 나서

by 피츠로이 Fitzroy
먼 후일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멍이 들었다. 오른손 중지와 약지 사이에. 처음엔 밤 새 뭐에 물렸나 싶었는데 누르면 통증이 오는 거 보니 멍이 맞나 보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밤에 자다가 주먹으로 벽이라도 친 걸까. 주먹으로 치고 싶은 건 사람이었는데. 주먹으로 쳐야 할지, 손바닥으로 쳐야 할지 몰라 치는 연습을 하기 위해 탁구라도 배워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를 닦다가 손에서 치과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치아에 문제가 있나 입을 아아- 벌려 거울을 들여다봐도 멀쩡하기만 한데 손에서 자꾸 치과 냄새가 난다. 요즘 시작한 담배가 손가락에 냄새를 남겨 사뭇 치과 냄새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술과 담배, 커피가 내 몸을 해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면서도, 몸에 받지도 않는 걸 부러 열심히도 하고 있다.

나는 생일이 좋은 사람이다. 생일이면 괜히 들뜨고, 많은 이들에게 축하받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고, 웃고 싶다. 생일이면 되려 스스로의 기분을 좋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었다. 생일 따위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그게 안타까워 내가 있음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길 기대했던 적도 있다. 이젠 항상 행복한 생일만 보내자고 문자도 보내 주었다. 올해 생일엔 내가 옆에 없지만 그래도 우울해하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나는 참 착하기도 하지). 생일만 되면 이상해 지던 사람, 올해는 어떤 생일을 보낼 것인가. 문자를 보내보고 싶지만 나는 지금 너무 바빠서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라고 자기 암시를 하며 참고 있다.

모든 것들이 잊혀지지만, 아직 잊지 못한 것도 결국 잊혀질테지만, 생일 따위 곧 기억 못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 사람을 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지금 보다 더 심한 멍이 들어도 상관없다. 일부러 못 된 짓만 골라하며 몸을 괴롭히는 것도 상관없다. 당신을 만나서 당신을 치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어 너를 잊을 수 있다면, 그 후 '잊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초록색이 예뻐서. 그리고 내 발끝도 슬퍼하고 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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