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지 않는 위로라도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by 피츠로이 Fitz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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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까닭 없이 울적하여 바람을 쐬고자 혼자 나갈 준비를 한다.

스펀지하우스에서 '텐텐'을 예매하여 내 티켓의 좌석번호와는 상관없이 혼자 온 어느 말쑥한 아저씨를 따라 맨 앞줄로 자리를 옮겼다.
영화에 등장한 삼색 치약의 분명한 세 가지 색깔이 너무 예뻐, 저런 치약은 도저히 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엉덩이에 묻은 짙은 유화물감 질감의 치약, 저 장면을 나중에 꼭 캡처하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수수하게 입혀 놓아도 뿜어져 나오는 오다기리 조의 훈훈한 기럭지하며, 옷 빨은 따라올 자가 없겠구나. 비록 내가 그의 팬이 아니더라도 그건 인정. 초밥을 먹고선 도저히 자수하러 갈 수 없을 것 같아 카레를 선택한 아버지의 결정에 나는 당장 나의 부엌에서 카레를 만드는 생각에 빠졌다. 나는 카레가 좋다. 사실은 내가 만든 카레가 좋고, 카레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조금 더 좋다.

영화가 끝나자 나는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연락이 오지 않는 그를 책망하고 싶었고, 아무런 반응 없이 죽어있는 전화기를 미워하고 싶어 졌다. 잠실로 무작정 가서 기다려 볼까 아니면 애초 계획한 영화 두 편 보기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을까 고민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항상 닿을 수 있길 원하는 내가 이기적이 다고도 생각도 했고, 날 참 많이 기다리게 만드는 사람이구나 생각도 했다.

나는 비 오는 명동 거리를 조금 걷다가, 사람이 유난히 많은 어느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하나 사 먹었고, 스타벅스에 들어가 우산을 쓰고 총총히 걸어가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은 뎌뎌 커피를 마시다 중간에 달디 단 초콜릿 케이크를 하나 더 주문하기도 하고, 잡지책을 별 의미 없이 두권이나 넘겼다.

두 번째 영화 '구구는 고양이다'를 예매할 때는 아까와 동일한 매표소 직원이 찡긋 웃어주기까지 하고, 내가 힘주어 맨 앞자리로 1장 주세요 했을 땐 날 한 번 더 힐끗 쳐다본다. 그 사람과 영화를 보게 되면서 바뀐 행동 중 하나. 영화관의 뒷자리 보단 앞자리를 선호하게 되었다는 거. 그 사람은 집중이 잘 되서란다. 나도 그 이유를 말했는데.
내가 키우는 고양이는 아메리칸 숏헤어 종이다 '곤'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영화의 주인공 '구구'란 고양이도 아메리칸 숏헤어. 나는 왜 우리 곤이 저기 가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사람이 비슷하게 생겨도 각각 조금씩 다르듯이 우리 곤도 구구랑 다르게 생겼을 터인데 나는 쉽게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괜히 심술궂게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고양이들도 우리 사람들을 바라보며 백인, 흑인, 황인은 그저 다 똑같게 생겨 보일까? 곤의 사료를 주문하면 덤으로 오는 간식 캔들을 받게 되는데 거기에 그려진 고양이도 곤이랑 똑같이 생겨서 허 이거 참 하고 몇 분 바라본 적도 있었다.
상큼한 우에노 주리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던 그런 영화. 그녀의 귀여운 발랄함도, 헤어스타일도, 패션도 따라 해 보고 싶었다.


비도 오고 오라고 하지 말까 했는데 그래도 보고 싶어서-라고 시작한 병원에서의 데이트. 참 이상한데서도 데이트한다고 말했다. 이틀 동안 담배를 참느라 힘들었다며 나를 보자 긴장이 풀어져 한 모금 무는 걸 나도 뺐어서 폈다. 나도 오래 참았다.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난 병원이 싫다. 병원의 냄새가 싫고, 병원에 누워있는 아픈 사람들이 싫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추억까지 떠올려지는 것이 싫다. 그런데 그 사람은 여기까지 왔는데 인사라도 하고 가지 하며 병원 안으로 들어가 보길 원한다. 나는 복장이 불량하다, 이런 일이 익숙지 않아 수줍다 몇 차례 고사하다가 결국은 기꺼이 올라간다.
어른들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떨리는 일이다. 나도 사실 어른인 주제에. 그래도 나는 생글생글 웃고, 인사를 반듯하게 드리고 나왔다. 다만 빈손으로 와서 죄송합니다, 어서 쾌차하세요 라든지 많이 힘드시죠, 나쁜 결과는 없을 거예요 등의 병문안 온 사람의 기분에 젖어 통상하는 의례적인 말들은 건네지 못했지만. 실은 안심했다. 날 보시며 허허 웃어주시던 얼굴 하며 서글서글하신 눈매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오늘 본 영화가 어땠다며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고, 오늘 두 편의 일본 영화를 보면서 배운 일본어가 있다며 능숙한 일본어를 하는 그 사람 앞에서 한 마디를 수줍게 해본다. 그 사람은 오늘 아버지가 어떤 검사를 하셨고, 결과는 언제나 오며 나쁜 일 없길 바래야지 하고 말하며 웃는다. 난 그냥 가만히 안아준다. 이럴 땐 어떨 말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비가 그치길 기다려 나를 택시에 태워주는데, 나는 오길 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낮에 뜸한 연락에 서운했던 감정은 생각나지도 않는다. 그리곤 금방 오는 문자. 고마워 오늘. 많이 보고팠는데 찾아와 주었고, 아버지에게 작은 생기 가득 안겨주고.


집에 돌아와 나는 오랜만에 피로감을 느낀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날 반기는 곤을 10초간 안아주고, 아버지와 동생이 먹다가 남겨둔 볶음밥을 열심히 해치운다.
잠이 오길 기다리며 누워서 듣는 라디오에선 이런 음악이 나온다.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가사를 가진.
우리는 서로가 있어서 사는 모양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말할 게 못 되는 개인적인 우울 때문에 힘들어했는데 오늘 두 편의 영화와 작은 병문안과 그대를 만나서 행복해졌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정신없이 병원에서 복잡한 일들을 처리하며 마음이 다치고 상해 있을 그에게 나는 사실 위로다운 위로 한 번 못했지만 내가 있어 다행이지 않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혼자가 아니란 게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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