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아메리카노

by 피츠로이 Fitzroy

여름엔 아이스 아메리카노-♪

요즘 이나영이 부르는 '여름이니까 아이스커피~ 여름엔 맥심 아이스~' CM송을 꼭 흥얼거리지 않는다 해도
난 여름의 아이스커피를 좋아한다.
시럽도 없이, 밀크도 없이 씁쓸한 맛으로 즐기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를 좋아하면서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생각했는데
작년, 아무것도 넣지 않은 쓴 커피를 좋아하게 되면서 나 진짜 어른인가 봐- 했다.
그놈의 '어른'
27살의 난 아직도 어른 같지 않고, 아마 50살이 되어서도 난 언제 어른이 될까 생각할 듯 싶다.

커피의 추억은 어렸을 적
TV 보는 엄마 아빠를 대신해 커피물을 끓이던 시절부터 시작된다.
물만 끓이다 짬밥이 좀 되었다 싶었는지 커피까지 타 오기를 주문하셨는데
설탕 두 스푼 프림 두 스푼으로 간을 맞추다 보면 삼분의 일은 이미 내가 마신 셈이 된다.
그래도 "커피 맛있게 잘 탔네"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고3 때는 학교에 있는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쉬는 시간마다 뽑아 마셨다. 율무차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른 흉내를 내고 싶었다기보다는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오고 잠이 안 오면 나는 공부를 더 잘할 수 있겠지라는 논리였다. 그래서 하루에 기본 3-4잔은 마신 거 같은데, 늦게 알았지만 난 잠들기 직전 커피를 한 사발을 마셔도 잠을 아주 잘 자는 카페인에 강한 사람이었다.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뽑는 척하며 근처 교무실 앞에서 얼쩡 댄 건 좋아하는 선생님을 한 번이라도 더 볼려던 작전이었고.

첫 직장에서 두 번째 직장으로 옮긴 후 아무도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고 일하는 데
내가 그렇게 들락날락 거리며 봉지 커피를 마셔 댔다고 한다.
회사 따라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내 첫 직장은 근무 중에도 근처 커피숍에도 다녀올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웠던 반면
옮긴 회사는 사내에서 봉지 커피 마시기도 조금 눈치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조용히 나와 회사 앞 놀이터에서 혼자 한숨을 돌렸던 건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연애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커피숍엘 자주 들락거렸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만을 주문하던 우리의 같은 취향에 기뻤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엔 시럽을 넣지 않아야 한다고 입을 맞췄고 단 게 먹고 싶으면 단 커피를 시키는 것이 맞다며 '우리 마음대로 이론'을 펼쳤다.

아무튼 여름이 간다. 처서가 지나고, 벌써 에어컨을 키면 선뜩함을 느끼며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데
여름이 가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계절이 가는 것이 아쉽다.
오늘도 나는 얼음이 덜그럭 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을 들고 귀가하는데,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밥 값보다 비싸다는 브랜드 커피가 아니고, 길에서 있어 보이려고 커피 컵을 들고 다니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아닌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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