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처음이 힘든 거죠

by 피츠로이 Fitzroy

지난 달인가 집에서 쉬는데 몸이 너무 아팠다

집엔 아무도 없고 끙끙 앓고 있는데 물냉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물냉면 한 그릇만 먹으면 깨끗이 나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혼자 무작정 나와 동네 김밥천국엘 들어갔다

흘깃 보니 혼자 김밥 먹고 있는 남자가 있어 안심이 됐다

물냉면이 나왔는데 이십오 년 동안 살면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그런 냉면이 나왔다. 면이 덜 익어서 잘 끊어지지도 않는......

직원분에게 "이것 좀 한번 드셔 보실래요?" 이 한 문장을 던지려고 열일곱 번의 기회를 노렸다가 그만두었다

혼자 온 것도 걸리고 소심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근데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내가 너무 짜증 나고 불쌍해서

근데 또 그 한 그릇을 다 먹고 계산을 치르고 나왔다


오늘도 밥을 어쩌다가 혼자 먹게 되었는데

사람도 그렇게 많은 곳에서 어찌나 씩씩하게 먹게 되던지

잠깐은 걱정도 했다. 아는 사람이 와서 "너 왜 밥 혼자 먹어?" 이럼 뭐라 그러지 궁리하다가 "불쌍하면 같이 먹어주던가" 하고 시크하게 한마디 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어른이 다 된 거 같다. 내가 변한다. 작년까지만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하고 있다

좋은지 싫은지는 잘 모르겠다


당황스러운 일도 있었다

페디큐어를 바르려고 꼼지락거리다가 내 오른쪽 발꿈치가 왼쪽 엄지발톱에 걸렸다. 왼쪽 엄지발톱이 세로로 반이 쩍 갈라져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이것도 이십오 년 만에 처음 겪어보는 일. 나 바본가.

아빠도 황당해하고, 고통이 찔끔찔끔 와서 소독하며 호호 불어보기도 하고 밴드도 감아주었다

그래서 내 한쪽 엄지발가락은 못난이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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