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로티피컬레이디 Dec 12. 2022

신체적공감(Body Empathy)과 상호의사소통 2편

우리가 몰랐던 육감, 케어기버가 되어 가는 정형인 배우자

 지난 1편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육감에 해당하는 '신체적 공감각(Body Empathy)'에 대해 소개하고, 신체적 공감각의 부재가 아스피 배우자와 정형인 배우자 간의 상호 작용에 있어서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 2편에서는 정형인 배우자가 신체적 공감각을 이용해 뉴로다이버스 관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합니다. 


 1편에서 설명했던 것과 같이, '신체적 공감'은 뇌 발달이 전형적으로 이루어진 사람의 경우 자연스럽게 타고난 감각과 같은 것입니다. 미각, 촉각, 후각, 시각, 청각의 오감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기쁨이나 고통, 슬픔, 분노 등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상태를 보았을 때 그것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몸으로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신경전형인의 경우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사람마다 오감 발달이나 민감도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이러한 신체적 공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타인을 공감하게 됩니다. 물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이런 신체적 공감각 역시 더 발달된 경우이겠지요. 


 이에 반해,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이처럼 감각으로 느끼는 공감을 타고 나지 않았으며,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뒤, 인지적으로 이해하거나 그 상황을 자신의 과거의 경험에 연결시키는 방식을 통해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증 자폐에 해당하든, 고기능 자폐(아스퍼거 증후군)에 해당하든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경우, 공통적으로 마음이론의 결핍으로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어려워 하고 사회 생활에 필요한 기술들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지 못해 학습을 통해 익혀야 합니다. 따라서 아스피들에게 사회 생활을 하는 것은 신경전형인에 비해 훨씬 어렵고 힘든 일이 되겠지요.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학습해서 익혔던 것들을 잊지 않고 적용해야 하는 긴장의 연속인 상황이 됩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배우자와 결혼하게 된 많은 정형인 배우자의 경우, 공감 능력이 평균을 훨씬 뛰어 넘어 매우 발달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결국 신체적 공감각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예민하고 발달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많은 전문가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배우자가 본인의 자폐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경우라고 할지라도 아스피들은 본능적으로 이렇게 공감 능력이 뛰어난 배우자에게서 처음부터 매력을 느낀다고 합니다.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가진 정형인 배우자들은 아스피 배우자들의 예민한 감각이나, 긴장의 연속인 사회적 교류 상황 등과 같은 어려움을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아스피 배우자들이 어려운 상황을 덜 겪을 수 있게 도와 주기 때문이죠. 연애를 할 때부터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상황에서 정형인 배우자는 아스피 배우자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아스피 배우자가 이해하기 쉽게  상황을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공감 능력의 측면에서 양극단에 있는 두 사람이 함께 결혼하여 생활하게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정형인 배우자는 아스피 배우자의 사회적 교류를 돕고, 코칭하고, 더 나아가서는 대신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집안의 대소사나 친구들의 경조사, 크고 작은 모임 참석, 선물 챙기기,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거나 인사치레를 하는 것 등... 한 가정이 사회 구성원으로 교류를 하며 살아 가는 데 필요한 수많은 부분들은 정형인 배우자의 몫이 되기 시작합니다. 원래는 아스피 배우자의 친구나 직장 동료, 가족 구성원이었던 사람들도 점점 정형인 배우자에게 연락을 하고 정형인 배우자가 아스피 배우자를 대신하여 이들과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사회적인 교류 측면에서 정형인 배우자는 아스피 배우자를 위한 케어기버(care giver 돌봄을 주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정형인 배우자는 발달한 공감각 때문에 케어 기버가 되는데, 이는 바로 아스피 배우자의 멜트다운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신체적 공감각이 발달된 신경전형인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신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자신의 감각이나 감정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스피 배우자가 감각 과부화나 지나친 외부 자극, 허용 범주를 넘어선 사회적 교류로 인한 긴장감 등으로 멜트다운 상황에 처하는 경우, 정형인 배우자는 아스피 배우자의 스트레스와 긴장감, 신체적 증상 (두통 등), 우울감, 분노 등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아스피 배우자의 멜트다운은 정형인 배우자에게도 고통스럽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이 되겠지요. 때문에 정형인 배우자는 아스피 배우자가 멜트다운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평소에 많은 노력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스피 배우자가 힘들어 할 것 같은 상황들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 집 안 조명을 낮추거나 시끄러운 소음을 방지하기도 하고,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행사나 외출도 삼가게 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있는 집의 경우에는 아스피 배우자에게 환경을 맞추려고 하는 과정에서 아이나 정형인 배우자의 선호보다는 아스피 배우자의 선호가 우선되는 환경이 갖춰질 수도 있습니다(예: 아이는 밝은 거실을 좋아하지만 거실을 어둡게 만들거나, 아이들이 시끄럽게 굴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상황). 시끌벅적한 레스토랑이나 놀이공원, 공연장이나 쇼핑센터 등 정형인 배우자나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외출 장소들은 아스피 배우자와 함께 하기 어려워 피하거나 정형인 배우자가 아이들만 데리고 가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스피 배우자를 배려하고, 정형인 배우자도 함께 힘들어지는 상황이 싫어 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아스피 배우자에게 맞춰가기 시작한 것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형인 배우자의 삶의 만족도는 크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배우자와 시끌벅적한 장소에서 식사를 하며 데이트를 하는 즐거움이나, 가족 모두가 놀이공원에서 신나게 노는 경험, 즉흥적인 여행이나 외출, 가족이나 아이 친구들의 생일 파티에 함께 참석하는 즐거움 등... 일상 생활에서 점점 정형인 배우자가 원하는 행복한 이벤트들이 줄어가기 때문이죠. 또한 일상 생황에서 하나하나 아스피 배우자의 필요를 배려하다보니 불편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한 배려와 돌봄을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결혼한 부부의 경우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돌보는 것이 행복한 결혼 생활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부모 자식 관계(부모가 자녀에게 훨씬 더 큰 케어기빙을 주는 관계)가 아닌 커플, 부부 사이에서 이러한 케어기빙은 상호적으로 균형을 맞추어 주고 받음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부분은 성숙한 성인 두 사람이 만나 동등한 위치에서 장기적이고 깊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그런데 뉴로다이버스 관계의 경우 이 부분에 큰 불균형이 발생합니다. 아스피 배우자가 사회적 교류를 원활하게 하고, 감각 과부화나 기타 다른 불안 요소로 멜트다운에 처하지 않고, 한 가정이 평범한 모습을 갖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정형인 배우자가 굉장한 에너지와 시간, 노력을 들여 케어기빙을 하는 상황이 계속됩니다. 


 반면 아스피 배우자의 경우에는 정형인 배우자의 생각이나 감정, 필요 등에 대해 먼저 파악해서 돌봄이나 배려를 하는 것이 어렵고 많은 경우에 그것이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이라는 점도 놓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자폐 성향의 본질이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인만큼 아스피 배우자는 이미 그 어떤 누구에게 보다도 자신의 배우자에 대해서는 (자신의 기준에서) 특별한 노력과 배려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가 객관적인 기준에서 충분하지 않거나 불균형적이라는 부분은 아스피 배우자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스피 배우자는 이미 최대한으로 정형인 배우자와 가족들을 위해 많은 것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아스피 배우자는 정형인 배우자가 얼마나 많은 케어기빙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이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때문에 정형인 배우자가 계속해서 일방적으로 아스피 배우자의 케어기버가 되어 가는 것에 대해 지치거나 불공평하다고 느껴 이 부분을 대화로 풀어가려고 하면 아스피 배우자는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공격을 받는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이 때 정형인 배우자 입장에서는 부부 사이에서 당연한 기대치에 대해 공통된 이해를 가져보려고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스피 배우자는 정형인 배우자가 너무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고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거나 요구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정서적 지지나 위로, 교류와 같은 부분에 대한 정형인 배우자의 기대는 채워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고, 이 부분을 강조하는 것은 끝나지 않는 갈등을 만들어내는 주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뉴로다이버스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 아스피 배우자의 자폐성향에 대해 잘 아는 정형인 배우자일수록 상대방이 고의적으로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자폐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굉장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동반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나아가 뛰어난 공감능력으로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기 때문에 계속해서 아스피 배우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어려움이나 갈등을 줄이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있는 경우에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더더욱 아스피 배우자에 대한 케어기빙을 높은 수준으로 이어가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때로는 정형인 배우자가 코디펜던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지기도 합니다. 나아가 일방적인 케어기빙에 지치고 불공평하다는 감정이 생겨 우울과 분노의 복합적 감정 상태를 보이게 되면 경계성 인격장애의 특징들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흔히 알려진 카산드라 증후군의 다양한 증상들이 이런 부분들을 모두 포괄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뉴로다이버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정형인 배우자는 자신의 이러한 케어기빙과 아스피 배우자로부터 충분히 받지 못한 돌봄과 배려, 이해와 공감 등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아스피 배우자가 상대방에 대한 돌봄과 배려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가 상호적이고 균형적이지 않아 충분하지 않을 수 있고, 아스피 배우자와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형인 배우자는 이미 많은 에너지와 노력을 쏟아 붇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의 정서적,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대해 계속해서 체크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방지하지 않는다면 쉽게 지치고 번아웃이 올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형인 배우자가 스스로에게 충전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충분히 주고 자신을 사랑하고 챙기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 됩니다. 물론 제 경험상으로도 스스로를 돌볼 타이밍과 기회를 놓쳐 너무나 힘든 상황을 한 번씩 겪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뉴로다이버스 관계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거나 해치지 않고, 또 아이들이 있다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건강하고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정형인 배우자 스스로 본인의 케어기버로서의 역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이해,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최대한 많이 터득해야 할 것입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많은 정형인 배우자 분들이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이미 너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시다고 꼭 말씀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공감 능력은 분명 특별하고 귀중한 강점이라는 것도요. 혹시 지금 계속되는 케어기버 역할로 너무 지치신 경우라면, 한 번쯤 본인의 공감능력 레이더를 살짝 스스로에게 돌려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배려와 이해, 돌봄이 필요했는지 들여다 보고 스스로에게 필요한 케어를 주면서 회복하실 수 있을 거에요. 


 다음 글에서는 정형인 배우자의 '셀프 케어'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도록 할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