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접촉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주차장이라 도로법이 적용되지는 않지만 직진 차선길을 가던 중에 주차를 하던 차량이 튀어나오면서 생긴 사고였다. 거대한 바위가 날아와 박힌 느낌이었고 너무 놀라서 순간 얼어버렸다. 아이가 타고 있어 심히 걱정되는 가운데 아침부터 지각에, 하루 종일 보험회사 전화에 시달렸다. 크게 안 다쳐서 다행이었지만 너무 놀란 하루였다. 메멘토 모리, 가끔 느닷없이 죽음이 내 앞에 등장해서 경각심을 주곤 한다.
다음날, 사고로 만난 보험 회사 직원이, 최근에 다른 문콕 사건으로 봐서 이렇게 낯이 익나 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돌보던 치매 어르신의 손자였다. 무척 공손하고 밝고 효심이 깊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른 장소 다른 일로 보니 같은 사람인지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 갑자기 온 문자에 잘못 보냈나 싶어 물음표 세 개 보냈다가 뜬금없이 전화를 받고 나서야 알아챘다. 평소 눈썰미가 꽤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장소 다른 페르소나로 만나니 무용한 느낌.
할머니살아계실동안잘챙겨주셔서감사했습니다.
이렇케라도인사드릴수있어감사드립니다.
눈물이 찡한 오후다. 띄어쓰기 없어도, 오타조차, 감사하다. 평소 잘 안 몰던 남편 차로 출퇴근했더니 긴장도가 영 올라갔었는데 마음이 따뜻해졌다. 할머니는, 온순한 치매였다. 주변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 않고 순종적이고 말 잘 듣는 치매 환자였고, 같이 내원하는 손자는 언제나 공손했다. 인연이, 이렇게도 이어지는구나. 세월이 흘러 더 이상은 외래를 찾지 않는 인연들은 별이 되어 나를 떠나가고, 남아 있는 혈육들이 그 소식을 전할 때면 어떤 날은 웃을 수 있고, 어떤 날은 슬픔에 잠긴다.
치매 환자는 생각보다 꽤 많다. 60세 인구에서는 1%이고 이후 5세 증가할 때마다 유병률이 2배씩 증가한다. 65세 이상 인구 전체로 보면, 약 10%의 유병률을 갖는다. 할머니 열명 중 한 명이라는 소리다. 치매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쌍두마차는 역시 알츠하이머 치매와 혈관성 치매이며, 그중에서도 65세 미만 발병하는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 전체 알츠하이머 치매의 5.5%가량 된다. 10만 명 중 8.3-22.8% 라는 광범위한 발생률로 조사되는 것을 보면 정확한 통계가 나오기 어려운 질환인 것 같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 이건 정말 너무나 슬픈 일이다.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 보통은 대학병원에서 (연구 목적도 있고, 새로운 치료 접근성 등의 이유로) 진료를 권고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내가 끌고 가야 하는 케이스가 생긴다. 지난 외래 방문 때엔 그나마 초등학생 막내와 함께 구구단 외기 정도가 가능했는데, 오늘은 막내딸 나이도 모른다. 거울이나 창에 비친 자신을 보면 그것이 자신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화를 내고 대화를 하고 때리기도 하고, 텔레비전 속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현실과 혼동한다. 밤이 되면 순하디 순한 양 같던 지난 성품은 오간 데 없이, 욕하고 화내고 못돼 먹은 살쾡이로 변한다.
진행이 너무 빠르니 옆에 있던 사람도, 나도, 지켜보는 모두가 속수무책이다. 내원 때마다 힘들어하는 보호자의 모습을 봐야 하는 나의 마음도 함께 무너진다. "원래 이런가요. 더 진행하면 어떻게 되나요." "네에.. 보통 그렇습니다. 진행이 일반적인 치매에 비해 아주 빠른 편입니다. 신체적인 기능은 남아 있지만 점점 더 기억을 잃어갈 것이고 점점 어린아이로, 점점 덩치만 큰 신생아로 변해 모든 것을 해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기억과 망각에 영감을 얻어 나온 영화는 많다. <메멘토>, <이터널 선샤인>, <첫 키스만 50번째>, <내 머릿속의 지우개> 등 그 외에도 엄청 많을 것이다. 기억을 잃으면 그 사람의 본질도 사라지는 걸까. 나를 구성하고 있는 나의 과거, 나의 말, 나의 언어가 사라지는 순간, 과연 그것을 나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영화 <스틸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말한다. 어쩌면 기억이란 존엄성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암이면 좋겠다. 적어도 부끄럽진 않잖아. 암에 걸리면 날 위해 핑크색 리본도 달고 캠페인도 하고 모금 운동도 해주니까 이런 비참한 기분은 안 들겠지, 뭐랄까. 사회적.. 단어가 생각 안 나네.
실제로 치매는 병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도인지 장애 정도일 때 스스로의 의지로 생각하고 자살을 시도했던 앨리스도, 병식 없이 진행된 상태에서는 결국 미리 예정되어 있던 자살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자기가 만든 지시 영상에서의 수행 과제 몇 가지조차 잊어버려서 다시 보고, 다시 하고, 하나하나의 수행 동작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빛날 때 병을 인지하게 된 앨리스가 무너지는 과정과 총기를 잃어가는 줄리안 무어의 눈빛 연기는 대단했다. 불안감을 표현하는 시선 처리, 그리고 상동증적인 손짓, 허공을 바라보는 초점 없는 눈. 여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것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기억을 매개로 한 많은 영화들이 로맨스를 함께 물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조발성 알츠하이머에 대한 순수한 인생을 담고 실제에 가까운 설정들과 개연성으로 진한 감동을 이끌어낸다. 눈물 줄줄 쥐어짜지 않고 진한 감동을 주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영화였다.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이 이렇게 썼죠. "상실의 기술은 어렵지 않다. 모든 것의 의도가 상실에 있으니, 그것들을 잃는대도 재앙은 아니다." 전 시인이 아니라 조발성 알츠하이머 환자이지만 매일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내 태도를 상실하고, 목표를 상실하고, 잠을 상실하지만 기억을 가장 많이 상실하죠. 전 평생 기억을 쌓아왔습니다. 그것들이 제게 가장 큰 재산이 되었죠. 남편을 처음 만난 그날 밤, 저의 첫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아이를 가졌을 때, 친구를 사귀었을 때, 세계 여행을 했을 때. 제게 평생 쌓아온 기억과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었던 것들이 이제 모두 사라져 갑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지옥 같은 고통입니다. 점점 더 심해지죠. 한때 우리의 모습에서 멀어진 우린 우스꽝스럽습니다. 우리의 이상한 행동과 더듬거리는 말투는 우리에 대한 타인의 인식을 바꾸고 스스로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바꿉니다. 우린 바보처럼 무능해지고 우스워집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병이죠. 여느 병과 마찬가지로 원인이 있고 진행되며 치료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 가장 큰 소원은 제 아이들이, 우리의 아이들이, 다음 세대가 이런 일을 겪지 않는 겁니다. 지금 전 살아 있습니다. 전 살아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기억을 못 하는 저 자신을 질책하고 하지만 행복과 기쁨이 충만한 순간도 있습니다. 제가 고통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서죠.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순간을 사는 것과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는 것. 상실의 기술을 배우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는 것. 그리고 끝까지 놓기 싫은 한 가지는 오늘 이곳에서의 기억이지만 결국 사라지겠죠, 저도 압니다. 내일 사라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오늘 이 자리는 제게 큰 의미입니다. 의사소통에 푹 빠져 있던 예전의 제겐 말이죠.
-영화, <스틸 앨리스>에서 앨리스의 연설문 中
치매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좋은 결과를 내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상실의 기술은 치매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노화의 한 과정으로 겪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좀 덜 우스꽝스럽게,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일련의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과 일상, 그리고 기록이다. 병적인 상태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나는 상실의 기술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