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경력 10년이라 해도 다 같은 주부가 아니다. 거의 일을 쉰 적이 없고, 일을 병행하는 동안 집안일을 도맡아 해주는 도우미가 언제나 있었기에 언제까지나 주부 초보인 나인데, 이곳 미국에 왔더니 매일 삼 시 세끼를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두 사람의 도시락을 매일, 혹은 세 사람 몫의 점심을 싸야 한다. 오 마이갓.
여기는 오고 가는 길에 한식 반찬 가게도 없고, 부모님 찬스도 못쓰는 곳이 아닌가. 어딜 가나 배송료에 비용을 지불하면 반찬 가게를 이용할 수 있기는 하겠으나, 직접 보고 살 수 없으며 거리도 꽤 멀고 가기도 쉽지 않다. 물가나 가성비를 생각하면 직접 해 먹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 상황이니. 어찌 되었든 상황에 맞게 살아 보자. 우선 아이들이 원하는 메뉴가 급식으로 나오면 그날은 급식을 먹기로 하고 그 외의 날에는 도시락을 싸가기로 하였다.
미국의 급식은 점심을 먹는 시간도 20여분 정도밖에 되지 않고 무척 단출하다. 머핀이나 베이글, 사과 한 조각, 우유 뭐 이런 식이니. 피자 데이에는 피자 한 조각에 야채 약간이 전부이다. 후다닥 먹을 수 있지만 그다지 영양가가 충분하지는 못하다. 아이들은 한 달에 3-4회 정도는 급식을 먹지만 대부분은 도시락을 선택하는데, 그 선택지도 많지가 않은 것이 함정. 치킨 텐더나 돈가스, 동그랑땡 같은 전 류를 잘 먹는 아이라면 그나마 싸기도 수월할 텐데, 나의 아이는 그렇지가 않기에 도시락 옵션도 무척 줄어들고 만다.
간단히 먹으면서도 영양가 있게 아이가 잘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난제로다. 매일의 고민 끝에 싸는 것은 결국 냉장고 한편에 있던 Weee에서 구매한 단무지 백 줄을 꺼내 김밥을 싸는 것이었다. 김밥, 그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딱 두 명의 아이를 위해 두 줄만 싸기에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밥도 2인분에 맞춰 소량 짓고, 계란도 2개만 꺼내 계란말이 하나 만들어 반으로 썰고, 당근도 2인분 정도 한 줌만 볶고, 시금치도 두어 줌만 꺼내어 데치고, 미국에 널린 둥근 햄 류 아무거나 2개 꺼내 데친다. 김도 2개 꺼내어 모든 재료가 준비되고 나면 식탁에 딱 앉아 김밥을 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침에 일어나 명상이라도 하듯, 무념무상 진행되는 어떤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다 말린 두 줄의 김밥 위로 참기름이 지나가고 (나중에는 생략했다. 미국 애들 중에 참기름 냄새를 극도로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다기에) 통깨를 솔솔 뿌려 끄트머리는 거의 얇게 잘라 내가 먹어치우고 7개로 똑같이 등분하여 한국에서 가져온, 자그마한 도시락통에 담아주는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손이 많이 가고, 또 해야 할 것이 많은 김밥이다. 예쁘게 잘 말려 동그라미 안으로 밥풀 중앙으로 잘 몰린 내용물을 볼 수 있는 날에는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 못한 날에는 다소 찜찜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먹고 오는 날에는 기분이 좋아졌다. 먹는 것 하나에 일희일비하게 된다.
도시락은 사랑이다. 어린 시절 그토록 매일 삼단 도시락을 싸주시던 엄마가 생각났다. 한국의 전통 3단 도시락에는 첫 칸에는 국물류가, 둘째 칸에는 밥이, 첫째 칸에는 반찬이 들어갔다. 2번째 칸까지는 보온이 되어서 점심시간이 되어도 따뜻한 국물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투정이라도 하는 날에는 어린 시절 투정하지 않던 내 왜곡된 이미지가 문득 떠오르면서, '너희는 도시락 싸주기도 왜 이렇게 어렵니!' 화를 내고 말았다. 내 엄마의 사랑을 곱씹고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싸주지는 못할 망정 이 무슨 망발인지. 어쨌든, 그렇게 매일 아이들이 하교 차에 올라서자마자 도시락 다 먹었니?부터 압박적으로 묻기 시작하고, 그렇게 둘째는 도시락 먹는 것에 오히려 부담을 느끼게 되면서, 둘째는 달력 한 달치 모두에 급식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말았다. 급식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자기는 고집스레 매 점심을 학교 급식으로 먹겠다며.
아뿔싸. 도시락을 싸주는 것이 무슨 벼슬도 아닌데, 혼자 생색내고 대단한 일인 양 과장된 몸짓으로 매일 다 먹었냐고 묻고, 참으로 한심한 엄마였다. 나도 문득 성질이 나서, '그래! 넌 한 달 내내 급식 먹거라! 대신 점심 다 안 먹고 간식 먹기 없다!' 화를 내고 말았지. 한 명은 싸고 한 명은 안 싸는 상황은 더욱 난제였다. 둘의 점심 식사가 온도차가 생기면 아침저녁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급식을 먹는 날엔 아침을 든든히 먹이려고 노력하는데, 둘이 다른 상황에서는 아침이 애매해졌다. 나중에는 언니의 도시락 스케줄에 맞춰 준 착한 둘째였지만, 한동안 모두가 쉽지 않은 길을 걸어야 했다. 모든 것이 업보로다.
한동안의 힘든 시기를 지나 지금은 점차 서로의 온도를 맞춰가며 부담을 덜고 도시락을 싸는 중이다. 매번 뭐 싸지 고민스럽지만, 김밥, 유부 초밥, 볶음밥, 비빔밥으로 돌려 막기 하는 중이지만, 아이도 나도 조금은 적응했달까. 가끔은 파스타를 싸주었더니 퉁퉁 불어 있었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고 볶음 우동이 식으면 맛이 없어 남겨 올 때도 있었으며 예전에는 먹지 않던 돈가스를 홈메이드로 만들어 주었더니 먹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변화도 생겼다.
그랬다. 아이를 처음 낳고 키울 때도 매번 달라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었는데, 여전히 똑같은 면모만 보여주지는 않는 아이들이었다. 적응할 만하면 언제나 찾아오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 너, 전에는 이랬잖아! 에 매 상황, 매 순간 똑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 변화무쌍한 아이들이다. 그에 맞춰 엄마가 진화하는 수밖에. 다 먹고 오지 않는 날에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고, 맛없다 싫다 투정 부리는 날에도 내가 너그러워져야 모두가 편안해진다. 진화하고 발전하고 나도, 아이들도 나아질 어느 날까지, 사랑으로, 기쁨으로, 매일 도시락을 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