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서기

조금은 무거울지 모를 이야기

by 느루 작가

나는 내가 번 돈으로 모든 생활비를 충당해야 한다.

능력이 없다보니 돈을 많이 벌 수 없었다.

다시 공부해야겠다 생각이 들어서 일을 더 늘렸다.

없는 돈 끌어 모아 저금을 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 있으면서도, 무슨 자존심이었을까?

집에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보내줬다.

줄 돈이 없어서 비상금대출을 받아서까지 빌려줬다.


나는 돈 아낀다고 삼각김밥,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웠다.

그것조차 싫증나서 먹기 싫은 날이면 안 먹었다.

우울한데 돈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미친듯이 일을 했다.


직장을 2개 다니니 1년 중 쉬는 날이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휴가는 아픈 날 썼다. 그런데 휴가를 쓴 날도 한 곳은 꼭 출근했다.

그렇게 1년을 살았다.


퇴사한 직후에는 휴일 없이 잠 줄여가며 일했던 탓인지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거의 2주를 하루 종일 누워서 지냈다.


'그래도 모아둔 돈이 있으니까 유학 가서 원 없이 어학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원하는 일을 하며 살면 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이 다짐이 되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여태 그려왔던 내 꿈을 실현할 루틴을 만들었다.

그러나 잠깐의 꿈이었다.


이제 좀 숨통이 트이나 했더니 몸에 정말 이상이 생겼다.

병원비만 200만원 이상 나갔다.

거기에 취업 후 학자금대출을 갚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100만원이었다.

보험 가입 된 직장이 2곳이라 세금도 내야 했다.

40만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가족과 지인에게 빌려준 돈도 받을 수 없게 됐다.


나는 모은 돈으로 자격증 시험과 유학을 준비할 예정이었다.

유학을 가기 전 생활비로도 써야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 지출이 너무 크게 생겨버렸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생활비를 줄인다고 한들 유학 길에 오를 쯤 쓸 돈이 없을 게 뻔했다.


마침 같이 회사 계약직으로 근무했던 직원 두 명이 실업급여를 받았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실업급여를 알아보고서 고용센터로 향했다.

거리가 멀어서 하루 날을 잡고 간 것이었다.

그런데 직장 2곳 중 한 곳이 발목을 잡았다.

계약직이지만 계약이 자동 연장되어 내가 자진 퇴사한 걸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와야만 했다.

기대감과 희망이 컸던 것에 배로 실망했다.


돌아온 후로 며칠 간 몇 시간씩 일을 알아봤다.

서서 하는 일을 하면 체력이 딸려 내 공부에서 손을 뗄 게 눈에 훤했다.

그럼에도 나는 당장의 불안을 해소하고자 이곳 저곳에 지원서를 넣었다.


아르바이트 경력이 워낙에 화려했던 탓일까?

새로 오픈하는 가게에 알바생으로 들어가게 됐다.


예상대로 루틴은 모두 깨졌고, 나는 또 내 꿈을 잠시 접어둬야 했다.

아침마다 할 일을 메모하며 소망을 그리던 날은 2주만에 끝이 났다.

나를 잘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그 미움은 나의 부모에게까지 퍼졌다.


부모에 대한 미움은 친구들과 주 4일제 근로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생겨난 가시였다.

"나는 돈 적게 줘도 되니까 그냥 일 적게 하는 게 좋다."

그 말에 내 얼굴이 붉어졌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월급으로 생활해야 하는 사람은 그게 힘들어."

나도 모르게 친구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쏘아붙였다.


생각해보면 그 대화를 함께 하던 친구들은 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직까지 나처럼 독립해서 살고 있는 사람은 없으니, 그냥 그 집단에서 공감을 얻지 못 했을 뿐인 것이었다.

헌데 왜일까, 그들에게서 벽이 느껴졌다.


'나도 부모님 밑에서 지내면서 일하면 저렇게 생각했을까.'

상상이 안 됐다.


나는 부모님과 살아도 돈을 모을 수 없어서 도망쳐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내 돈을 빼앗아 가는 건 아니었다.

그저 내 양심 때문인지, 도덕성 때문인지 그들이 눈 앞에 있으면 계속 신경이 쓰였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부모의 노후가 걱정되어 내가 자꾸 지갑을 열게 되었다.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일하면서 좋은 구경도 제대로 못 한 부모가 안쓰러워 내가 자꾸 뭐라도 하려 했다.


내가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집안에 있으면 '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서 나를 챙길 수 없었다.

내 타고난 기질이, 그 환경이 나를 돌볼 수가 없게 만들었다.

그 안에서 내가 시들어 가는 걸 느끼는 순간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냥 없어져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무기력해졌다.


부모를 원망하는 건 내가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개선할 의지를 버리는 것이라 생각해서 항상 억누르고 살았다.

그들도 부모가 처음인 것을, 인생이 처음인 것을.

이해하고 내 나름대로 인생을 펼쳐나가려 했다.

그러나 억누른 마음은 언제든 터질 것이었다.


홀로 잠 못이루는 밤을 보낼 때면 눈물이 났다.

내가 모든 것을 미워해서 그런 것인지, 모든 것을 사랑해서인지 모르고,

어디부터 솟구쳐 나오는 감정인지 감도 잡이지 않고,

그저 서글픈 마음에 줄줄 눈물을 흘리다가 잠들곤 했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있는 것은 내 삶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서 그런 것 같다.

점점 나이가 들며 숨통이 조이고, 불안감도 커져만 간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래는 것은 내가 나를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런 것 같다.


꿈만 꾸던 어린 시절을 후회해도 돌아오는 것은 없으니, 그때의 꿈을 마음에 품었다.

꿈만 꾸던 어린 나를 일으켜 꿈이 현실이 되도록, 느려도 멈추지 말자고 다독였다.


홀로 서서 나아가야 하는 삶이 어떨 때는 너무나도 고달프게 느껴지지만,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면 될 수 없다는 책임감에 다시 또 한 발짝을 딛는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 나와 상황이 비슷하다면 꼭 그대를 지켜주길 바라고,

나보다 나은 상황이라면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이해해주길 바라고,

나보다 힘든 상황이라면 더 아픈 일이 없길, 바랄 것 없이 기도만 드리겠다.


누구든, 당신이 삶의 주체가 되어 이겨내고 지켜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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