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4주기, 함께 아파하는 詩

4.16 이후 쓰여진, 그날을 기억하는 시들

by 느슨한 빌리지

누군가에게는 중간고사가 시작되는 날,

누군가에게는 주간회의가 있는 한 주의 시작,

오늘은 2018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4주기입니다.

출처: 뉴시스 [세월호4주기] "참사 잊기 않을게" 4년의 기억 간직 팽목, 목포 신항 조형물


개인적으로 지난 4년은 잊지 말자던 마음이

사실은 잊기 어려운 트라우마임을 깨닫는 시간이었어요.


잊으라는 말은, 시스템은, 빼곡하고 촘촘하지만

잊을 수 없는 마음은 이미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고,

노란 리본은 잊지 말자는 외침이라기 보다는

'너도 같이 아파하고 있구나' 알아채고,

같이 아파하고 싶은, 아직 벗어나지 못해 발버둥치고

헤엄치는 사람들이 보내는 신호 같은 것이라고,

감히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는

세월호 추모시를 모았습니다.

함께 읽고 아파해주세요. 신호가 가닿도록.



그날 이후

진은영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갈 때 핸드폰 충전 안 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 엄마 미안
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내리게 해서 미안
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


엄마, 가을의 모든 빛깔이 다 어울리는 우리 엄마에게 검은 셔츠를 계속 입게 해서 미안
엄마, 여기에도 아빠의 넓은 등처럼 나를 업어주는 포근한 구름이 있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달아준 리본처럼 구름 사이에서 햇빛이 따듯하게 펄럭이고
여기에도 똑같이 주홍 해가 저물어


엄마 아빠가 기억의 두 기둥 사이에 매달아놓은 해먹이 있어
그 해먹에 누워 또 한숨을 자고 나면
여전히 나는 볼이 통통하고 얌전한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아이
제일 큰 슬픔의 대가족들 사이에서도 힘을 내는 씩씩한 엄마 아빠의 아이


아빠, 여기에는 친구들도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어
"쌍꺼풀 없이 고요하게 둥그레지는 눈매가 넌 참 예뻐"
"너는 어쩌면 그리 목소리가 곱니,
어쩌면 생머리가 물 위의 별빛처럼 그리 빛나니"


아빠! 엄마! 벚꽃 지는 벤치에 앉아 내가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 기억나?
나는 기타를 잘 치는 소년과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녀들과 있어
음악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들과 있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밤길 마중과 내 분홍색 손거울과 함께 있어
거울에 담긴 열일곱 살, 맑은 내 얼굴과 함께, 여기 사이좋게 있어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속에 자주 못가도 슬퍼하지마
아빠, 새벽 세 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마
아빠, 내가 여기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하은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타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두둥실 업어줘
이모, 엄마 아빠의 지친 어깨를 꼭 감싸줘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


나의 쌍둥이 하은언니 고마워
나와 함께 손잡고 세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여기서, 언니는 거기서 엄마 아빠 동생들을 지키자
나는 언니가 행복한 시간만큼 똑같이 행복하고
나는 언니가 사랑받는 시간만큼 똑같이 사랑받게 될 거야, 그니까 언니 알지?


아빠 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마


시인의 한 마디

"시를 본 부모가 아이의 목소리로 자기는 잘 있다고 하는 말을 넣어줄 수 없겠느냐고 했어요. '나는 잘 있어요'라고 하는 아이의 말 한마디만 들으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고요."

─ 정혜신, 진은영 공저,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17435916



상상 밖의 모자들로 가득한

안희연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조금씩 기울어지는 시간을 겪고 있다

어쩐지 모험가가 된 것 같아

놀이기구 탄 것 같은데?
야, 내가 오늘 새 신발을 신어서 그래
방안으로 밀려드는 물을 보며 우리는 쉴 새 없이 킥킥거린다

웃음소리

정적
더 큰 웃음소리
정적
시소를 타듯

사실은 너무 무서워

허리까지 물이 차올랐을 때
누군가 구겨진 종이뭉치처럼 툭, 던진 말

*

여기 모자가 있다고 생각하자 이 모자를 쓰면 우리에게 놀라운 시간이 탄생할 거야
아이는 모자를 쓰는 시늉을 했다
모자를 쓰자 눈앞에 엄마가 있었어 너는 용감하고 자랑스러운 아이라고 하셨어
바통처럼, 그가 모자를 건넸다

아침에 반찬투정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왔어
두 번째 모자는 더 높고 뾰족해 보였다
동생이 갖고 싶다고 조르던 신발이 있었는데 선물로 주고 왔어
세 번째 모자는 더 높고 뾰족해 보였다
왜 자꾸 미안한 일밖에 생각이 안 날까?
…………
네 번째 다섯 번째 모자는 더 높고 뾰족해지고 있었다

턱 끝까지 물이 차올랐다
상상 밖의 모자를 쓰고서
우리는 일제히 눈을 감았다
황금빛 들판이 펼쳐진다 우리는 마지막 빛을 따라 깊고 느린 산책을 하고 있다


*


씨앗들

태양이 필요한 씨앗들


*


물속에는 왜 문이 없을까?
난 아까부터 까치발 하고 있어
지금부터 누가 제일 숨 오래 참는지 시합하자
여기 사람이 있어요 여기 사……라…ㅁ…

우리는 죽음의 수행원*
가만히 잠들라는 명령을 받았다


시인의 한 마디

"너무나 거대한 죽음이었어요. 개인의 죽음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죽음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너무 힘겨웠고 뭐라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쓴 거거든요."

─ 출처: 최규화, 인터파크 북DB, [기획인터뷰-첫눈에 반했어③] 안희연 “내가 생각하는 시인은 피부가 없는 사람”


관련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http://www.yes24.com/24/Goods/20528148




검은 방

신철규


슬픔의 과적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았다

슬픔이 한쪽으로 치우쳐 이 세계는 비틀거렸다


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그것이 일반명사인지 고유명사인지 알 수 없어 포기했다

기도를 하던 두 손엔 검은 물이 가득 고였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최대한 가만히 있으려고 할수록 몸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딱딱해지고 있었다


해변에 맨발로 서 있던 유가족

맨살로 닿을 수 없는 거리가 그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죽을 때까지 악몽을 꾸어야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

학살은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꾸는 악몽 같은 것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피가 돌지 않고

눈이 심장과 바로 연결된 것처럼 쿵쾅거렸다


모든 것이 가만히 있는 곳이 지옥이다

꽃도 나무도 시들지 않고 살아 있는 곳

별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멈춰서 못처럼 박혀 있는 곳

죽은 마음, 죽은 손가락, 죽은 눈동자


위로받아야 할 사람과 위로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기도밖에 없는 것인가


우리는 떠올라야 한다

우리는 기어올라야 한다

누구도 우리를 끌어올리지 않는다


가을이 멀었는데 온통 국화다

가을이 지난 지가 언젠데 국화 향이 이 세계를 덮고 있다

컴컴한 방에 검은 비닐봉지를 쓰고 앉아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힌다

꿈속에서도 공기가 희박했다


해변은 제단이 되었다

바다 가운데 강철로 된 검은 허파가 떠 있었다


시인의 한 마디

"숨을 곳도 없이 길바닥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 더는 생겨나지 않는 세상이 언젠가는 와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

─ '시인의 말',『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44145567




질의응답

안미옥


정면에서 찍은 거울 안에

아무도 없다


죽은 사람의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

버티다가


울었던

완벽한 여름


어떤 기억력은 슬픈 것에만 작동한다

슬픔 같은 건 다 망가져버렸으면 좋겠다


어째서 침묵은 검고, 낮고 깊은 목소리일까

심해의 끝까지 가닿은 문 같다


아직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생각하면

생각이 났다


덧붙이는 시

"모두 다 소풍을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신발장엔 차곡차곡 쌓여 있고 머리맡엔 숨겨놓은 발이 있다 // (중략) // 도착지를 모르는 사람들 / 모두 다 소풍을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 안미옥, 「금요일」부분, 『온』 중에서


시인의 한 마디

"함께 살고 싶다."

─ 안미옥, 「시인의 말」, 『온』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3882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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