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잠들지 못하고 있다면

김이강,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by 느슨한 빌리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어려운 건 빨래도, 청소도, 식사도 아닌 혼자 잠들기이다. 일단 잠에 들면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아도 수면 시간은 확보할 수 있는데, 잠에 들기까지가 너무 힘들다. 취업과 동시에 독립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직장 생활을 고민하느라 잠들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잘 때면 평일이든 주말이든 대개 쉽게 잠들고 잘 잤다. 그렇다고 누군가 붙어 자야 하는 건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방에 혼자 있어도 쉽게 잠들었다. 그때에야 깨달았다. 꼭붙어 자지 않아도 저 벽 너머에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받는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누군가와 함께 살거나 다시 본가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은 못 되었다. 그래서 불면에 특효라는 여러 방법을 써 봤다.

첫 번째. 술을 마신다. 가장 빠른 방법이다. 빨라 보이는 방법이다. 그러나 내 주량을 간과했다. 내가 빠르게 취할 리 없었고, 빠르게 취하기 위해 독주를 마시는 스스로가 마음에 들 리는 더더욱 없었다.

두 번째. 음악을 듣는다. 수면 클래식과 같이 잔잔한 음악부터 내가 좋아하는 발라드까지, 잠들기에 적절한 음악을 돌려가며 잠들기를 시도했다. 성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다음 날 깼을 때 세포 하나하나가 둥둥 울리는 이상한 느낌에 종일 피곤했다.

세 번째. 라디오를 듣는다. 마음 허기에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프로가 끝날 때까지 귀를 기울이는 바람에 늦게 잠들고 만다.

네 번째. 스트레칭을 한다. 혈액순환이 되어 절로 잠이 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스트레칭할 때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어 결국 두 방법의 부작용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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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모든 해결법이 큰 효과는 없었다. 당연하다. 혼자 잠들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 외로움을 해소하지 못하기 때문. 그리고 외로움은 사회에서 겪는 곤혹과 스스로에 대한 의심에 몸이 불어, 혼자 감당하기 벅찰 정도가 되었다. 자기 전까지는 먹든 청소하든 노래하든 춤추든 움직이며 고민과 의심을 뿌리칠 수 있었는데, 잠자리에만 들면 마음이 훅훅 달아, 화가 났다가 눈물이 났다가 문득 허무해져 멍하니 천장이나 벽면을 바라보기 일쑤였다. 헛헛한 마음에 괜히 SNS나 유튜브에 올라온 짧은 영상만 보다가 새벽을 지샌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나를 재우지 못하는 "술은 아무 죄도 없고 그렇다면 도무지 어디 가서 미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과거도 미래도 아무런 죄가 없"(「12월주의자들」)었다.



폴린느 그냥 듣고 지우면 그만인 얘기일 뿐이에요 그러니 그냥 듣고 지우면 그만인 것이에요 그냥 듣고 지우면 그만인 것이니까 이야기할 뿐이에요 아무것도 없이 맥주를 마셔요 머리카락도 없이 한쪽 다리도 없이 손톱도 모두 빠져 맥주를 마실 뿐이에요 음악은 치료제가 아니지만 음악을 들어야 하니까 음악을 듣고 치유되지 않아요 아무튼 나는 울던 것을 마저 울어야 해요 그러니까 이런 글은 아무런 것도 아니지만 실례가 되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아무것도 아닌 시간에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깐요


─ 김이강, 「폴린느」 부분



그러나 죄가 없다고 믿어도 새벽은 과거와 미래를 반추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밤새 뒤척이며 나의 문제를 생각하고, 문제의 원인을 찾고, 원인의 배경을 찾기 위해 아주 어릴 적부터의 행적 좇다가 늦게 잠들었다. 그렇게 하면 지금의 나와 달라질 수 있을 것도 같았다("푸른 저녁이 되어버려서/나를 생각해야지/나를 생각하다가/나로 돌아오지는 말아야지", 「푸른 저녁」).

하지만 내게 필요한 건 문제 해결이 아니라 기댐이었다. 오래 알던 친구, 새로운 사람, 자주 보아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깨달았다. 나는 대화가 필요했단 걸. 그러나 세 명은 물론 둘 끼리도 사는 곳과 상황이 다르니 자주 만나기 힘들었다. 늦게 끝나 집에 오는 길, 전화 한 통에 간단히 맥주 한 잔할 수 있는 동네친구가 절실했다. 그렇게 대화 나누고 집에 가면 좀더 쉽게 잠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손 닿지 않는 곳에서 구겨져 있는 / 피로나 그리움 같은 것들(「Black Apron」)"은 남이 긁어주기도 하니까.


그러나 이 퍼석한 삶에서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얼마나 부담인지도 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대고 싶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내 무게를 나누어주기 망설여졌다. 이미 모두들 버티기 힘든 짐을 버티며 살고 있으니. 상대가 이해해주리라는 걸 알아도 칭얼댈 만큼 능글맞지도 못했다. 내가 하는 말이 큰 위로는커녕 외려 상처가 될까 입 다물듯 만나고 싶다는 말을 자주 삼켰고, 사람 대신 사물에 기대기 시작했다. 요즘따라 탈 일도 없는 버스가 타고 싶어졌다. 버스에서만큼은 기대어 자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으니까. 자연스러우니까.



당신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목구멍에 침묵을 걸었는데

그런 건 위로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중략)


퇴근 행렬이 길어진다

남산으로 가서 돈가스를 먹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친구의 집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 멸종해버릴 것이다


─ 김이강, 「서울, 또는 잠시」 부분


버스에서는 잠이 들어

나는 그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해

기대어 잠드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고도 생각해

쓸데없이 우는 것이 미안하다고도 생각해


─ 김이강, 「겨울은 길었고 우리는 걸었지」 부분



요즘에는 그래서 모든 걸 한다.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으며 스트레칭한 후 작은 인형을 안고 큰 인형에 기대어 잔다. 대신 집에 사람을 초대할 수 있도록 식기나 조명을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이마저도 때가 안 맞아 실현하기 어렵겠지만, 누군가 기대고 싶어할 때 작은 공간이라도 내어주고 따뜻한 커피를 건넬 준비가 된 집이고 싶다.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란 질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은 잠시 접어두고, 밤에 몰아치는 대낮의 설움을 함께 견디고 싶다. '우리 어제 언제 잠들었지?' '몰라' 웃으며 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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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오늘 밤


1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오늘 밤

당신은 말한다 조용한 눈을 늘어뜨리며

당신은 가느다랗고 당신은 비틀려 있다


그럴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나도 어쩔 수가 없다고


가만히, 당신은 서 있다 딱딱한 주머니 속으로

찬 손을 깊숙이 묻어둔 채 한동안 오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것이다

행인들에게 자꾸만 치일 것이고

아마도 누구일지 모르는 한 사람이 되돌아오고

따뜻한 커피를 건넸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겨울이 갔던가


2

오늘은 고통과 죽음에 대한 장을 읽고 있다

이 책을 기억하는지

연필로 한 낙서를 지우지 못하고 도서관에 반납한 내게

겨울에, 당신은 묻는다 아무래도

이 책의 삼십칠 페이지에 있는 글씨가 내 글씨 같다고

안녕? 페이지 숫자가 마음에 든다


3

편도를 타고 가서 돌아오지 말자.

옆 테이블에서 젊은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말들 끝에 찻잔을 비우고 헤어진다

희미한 그림자들로 어떻게

대낮의 거리 한복판을 버티어낼까 망설이며

길 끝으로 사라져가고 있을 것이다


4

어느 거리에선가,

당신은 누구일지 모를 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

가느다랗고, 비틀리는 누군가를

그리곤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오늘 밤

오늘 소개한 시집: 김이강의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http://www.yes24.com/24/Goods/7842447
'연연의 다정한 시(詩) 읽기'는 시(詩)를 빌어 일상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시 일기'이기도 합니다.
격주 목요일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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