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일 때문이든 개인적인 용건 때문이든 메일을 주고받다 보면 자연스레 메일 스타일을 통해 만나 보지도 못한 상대방을 짐작하게 된다. 제목을 매번 새로 다는 꼼꼼한 사람, 시작과 마무리를 꼭 지키는 예의 바른 사람, 문장 부호와 이모티콘을 듬뿍 사용하는 발랄한 사람, 회신이 빠르고 정확한 단정한 사람 등등. 그러니 반대로 내 메일이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이는 건 당연한 일. 그 결과 메일 쓸 때 제일 고민하는 부분은 본문 뒤, ‘감사합니다’ 전 마무리 인사말이 되었다.
처음에는 별말 없이 용건 마치고 바로 ‘감사합니다. 누구 드림.’이라 적었다. 그런데 간단하게는 식사부터 나아가 요즘 컨디션까지, 나의 안녕을 빌어주는 메일을 만나며 나도 가급적 상대방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그의 안녕을 빌고 싶어졌다. 가깝지는 않지만 서로의 성실함으로 지탱되는 사이이기에, 다정하게 대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착한 말이 ‘남은 일 무사히 마치고 편안한 저녁 보내시길 바랍니다.’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나는 ‘잘 지내세요?’ 묻지 않는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아니요. 잘 못 지내요.’라 말해올 때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는 탓이다. 그러고 보니 같은 이유로 ‘잘 지내세요?’ 물어야 할 때는 ‘잘 지내시죠?’라 물었던 것 같다. 결국 내 인사말은 상대방이 아닌 내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였던 셈이다. 그렇게 메일 속의 나는 다정함과 냉정함 사이에서 어설퍼졌다.
잘 지내요,
그래서 슬픔이 말라가요
내가 하는 말을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나 혼자 듣습니다
내일이 문 바깥에 도착한 지 오래되었어요
그늘에 앉아 긴 혀를 빼물고 하루를 보내는 개처럼
내일의 냄새를 모르는 척합니다
잘 지내는 걸까 궁금한 사람 하나 없이
내일의 날씨를 염려한 적도 없이
오후 내내 쌓아둔 모래성이
파도에 서서히 붕괴되는 걸 바라보았고
허리가 굽은 노인이 아코디언을 켜는 걸 한참 들었어요
죽음을 기다리며 풀밭에 앉아 있는 나비에게
빠삐용, 이라고 혼잣말을 하는 남자애를 보았어요
꿈속에선 자꾸
어린 내가 죄를 짓는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마다
검은 연민이 몸을 뒤척여 죄를 통과합니다
바람이 통과하는 빨래들처럼
슬픔이 말라갑니다
잘 지내냐는 안부는 안 듣고 싶어요
안부가 슬픔을 깨울 테니까요
슬픔은 또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검게 익는 자두를 베어 물 때
손목을 타고 다디단 진물이 흘러내릴 때
아 맛있다, 라고 내가 말하고
나 혼자 들어요
─ 김소연, 「그래서」 전문, 『수학자의 아침』 중에서
잘 지내냐고 먼저 물은 경우는, 상대방의 안부가 진심으로 궁금해서보다 내가 잘 지내지 못해서일 때가 많았다. 목구멍으로 울음을 삼키고 내뱉은 적이 많았다. 아니, 사실 거의 전부였다. 그리고 물어 오기를 바랐다. ‘너는 잘 지내?’라고. 그렇게 물으면 ‘사실은 잘 못 지내.’라고 답해야지, 생각했다. 결심했다. 누군가 내 슬픔의 포문을 열어주길 바랐다. 나 스스로 열기에는 무겁고 두려웠다.
얼마 전, 묵혀둔 책을 정리한다는 명분으로 SNS에 책 나눔 게시글을 올려 여러 사람을 만난 일도 같은 이유였다. 자주 만나는 친구,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본 동창, 만난 적 없이 '좋아요'로만 소통해본 SNS 지인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났는데, 우습게도 첫 인사는 대부분 "잘 지내세요?"였다. 평소라면 '잘 지낸'다며 그저 가벼운 인사로 넘겼을 텐데, 요즘의 나는 도통 그럴 수가 없었다.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드려던 건 아니었는데, 매번 이렇게 되묻고 말았다.
"잘 지낸다는 건 어떤 걸까요?"
(전략)
잘 지냅니까,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할 줄 아는 말이 거의 없는 낯선 땅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잠깐의 반가움과
오랜 두려움뿐이다
두려움에 집중하다 보면
지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싶었던 사람이
실은 자신의 피폐를 통역하려 했다는 것을
파리처럼 기웃거리는 낙관을 내쫓으면서
나는 알게 된다
아파요, 살고 싶어요, 감기약이 필요해요,
살고 싶어서 더러워진 사람이 나는 되기로 한다
더러워진 채로 잠드는 발과
더러워진 채로 악수를 하는 손만을
돌보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했던 사람이
불구가 되어간 곳을 유적지라 부른다
커다란 석상에 표정을 새기던 노예들은
무언가를 알아도 안다고 말하진 않았다
그 누구도
조롱하지 않는 사람으로 지내기로 한다
위험해, 조심해, 괜찮아,
하루에 한 가지씩만 다독이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후략)
─ 김소연, 「여행자」 부분, 『수학자의 아침』 중에서
나는 어쩌면 잘 지내냐는 질문을 듣기 위해 어디로 닿을지 모르는 게시물을 올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아야 잘 지내는 것인지 되묻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을지 모른다. 잘 지낸다고 가정한 질문에서 "낙관을 내쫓"고 알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살고 싶어서 더러워진", 잘 지내지 못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라고, 알면서도 모른 척 말을 줄여가는 "낯선 땅" 위에 나 혼자 서 있지 않다고, 확인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의 슬픔을 두드리고 다독여주길 바라며, 비로소 나를 살아냈다고 느끼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책 나눔을 통해 확인 받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건 나만의 감정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모두들 사실은 잘 지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몰라서 어렵고, 어려워서 지치고, 지쳐서 점점 자신을 지워가고 있었다. "슬픔이 말라가"고 있었다.
너무 뻔한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시(詩)라고 생각한다. 고쳐 쓴다. 이럴 때 나는 허겁지겁 시를 읽는다. 시인은 "슬픔을 슬퍼하는 사람"이다. "사람인 것에 지쳐가는 사람"이다(「생일」). 온갖 것들을 그러쥐고 잘 지내냐고 묻는 사람이다. 물끄러미 그 다음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덕분에 나는 시를 통해 내 슬픔을 터놓는다.
그리고 그때에야 비로소 "죽지 못해 사는 그 애"가 "우리,라는 말을 저 멀리 밀쳐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한다(「백반」). 나도 슬플 때는 나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내 슬픔을 가둬두는 데에만 골몰해 내가 슬픔에 갇혔으니까. 그렇게 시를 읽으며 "그 누구도 조롱하지 않는 사람으로 지"낼 수 있게 된다.
다시, ‘다정(多情)하다’는 말을 생각한다. 왜 정은 ‘크다’가 아니라 ‘많다’일까. 부피보다 횟수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에 정(마음, 情)을 사용(혹은 주거나 붙일)하는 횟수가 정해져 있는 것 아닐까. 모바일 게임의 하트처럼. 모바일 게임에서 하트를 충전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면, 땅에 붙어 사는 우리는 정을 충전하기 위해 안부를 묻는다. 나 자신이 마음 놓고 슬퍼하기 위해. 슬퍼함으로써 놓은 마음으로 ‘너는 잘 지내?’라고 묻기 위해.
얼마 전, 새해를 맞으며 ‘울고 싶은 마음으로도 기꺼이 웃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뒤에 생략된 말이 있다. '웃으며 안부를 물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다정함이다. 그래서 이 코너가 ‘연연의 다시’로 읽히면 좋겠다. 일상의 고단함으로 인해 마음 줄 기회를 다 써 버렸을 때, 그래서 학교 마치고, 일 끝나고, 혹은 아무런 슬픔 없이, 엄한 사람에게 퉁명스럽게 대하고 말았을 때, 시를 읽으며 마음을 충전하고 싶다. 다시 다정해지고 싶다. 울음 대신 기꺼이 웃으며 안부를 묻고 싶다. 당신도 나와 함께 시를 읽으며 마음을 충전하면 좋겠다. 울음 대신 잘 지내냐고 물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울게 되면 좋겠다. "벌거벗은 사람이 되어 부끄럽게 서 있던 그 자리에/더 벌거벗은 한 사람이 나타나 오랫동안 당당하게 울(「평택」)"게 되면 좋겠다.
그래서 우선, 당신에게 묻는다. ‘요즘 잘 지내나요?’
나 잠깐만 죽을게
삼각형처럼
정지한 사물들의 고요한 그림자를 둘러본다
새장이 뱅글뱅글 움직이기 시작한다
안겨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안겨 있는 사람을 더 꼭 끌어안으며 생각한다
이것은 기억을 상상하는 일이다
눈알에 기어들어 온 개미를 보는 일이다
살결이 되어버린 겨울이라든가, 남쪽 바다의 남십자성이라든가
나 잠깐만 죽을게
단정한 선분처럼
수학자는 눈을 감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숨을 세기로 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간격의 이항대립 구조를 세기로 한다
숨소리가 고동 소리가 맥박 소리가
수학자의 귓전에 함부로 들락거린다
비천한 육체에 깃든 비천한 기쁨에 대해 생각한다
눈물 따위와 한숨 따위를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잘 살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요
잠깐만 죽을게,
어디서도 목격한 적 없는 온전한 원주율을 생각한다
사람의 숨결이
수학자의 속눈썹에 닿는다
언젠가 반드시 곡선으로 휘어질 직선의 길이를 상상한다
─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전문, 『수학자의 아침』 중에서
오늘 소개한 시집: 김소연의 『수학자의 아침』 http://www.yes24.com/24/goods/11406090
'연연의 다정한 시(詩) 읽기'는 시(詩)를 빌어 일상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시 일기'이기도 합니다. 격주 수요일에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