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o Sep 28. 2019

처음 오로라를 만난 날

옐로나이프 오로라 여행 첫 번째 날

어쩌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떨림 그 자체가 아니라 떨림이 지나간 후의 여운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머물다가 떠나간 후 빈자리에 남아 이미 지나가버린 열정을 되돌아볼 때의 그 뒤늦은 떨림 혹은 떨림의 여운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뒤늦은 자각이 마음을 흔든다.
-  떨림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들, 황경신,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중.




우리는 3박 4일 동안 총 3번의 오로라 뷰잉을 다녀왔고, 운이 좋게도 3일 내내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오로라를 꼭 한 번 볼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던 처음의 바람이 넘치게 이루어진 셈.


지구의 자기장에 진입한 오로라의 발생원, 플라즈마는 자력선을 따라 이동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플라즈마는 자력선을 둘러싸고 회전 운동하고 있는데, 이 자력선이 지구 면과 닿게 되는 곳을 나타내면 지구의 축을 중심으로 남북에 관을 씌운 듯한 모습이 되어 이를 ‘오로라 오발’이라고 부른다. 오로라가 자주 목격되는 이 영역은 북반구에서는 북위 60도 근처에서 형성되어 있는데, 알래스카, 노르웨이, 핀란드, 그리고 캐나다 옐로나이프의 위도가 이 오로라 오발과 가깝게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오로라 관측지로 유명하다.



캐나다 북동부 옐로나이프에 위치하고 있는 ‘오로라 빌리지’는 오로라 오발 중에서도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동일 위도 상에서 오로라를 관측할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한다. 3일 밤을 머물 경우 적어도 한 번 오로라를 관측할 확률이 95%라고 해서 3박 4일의 오로라 투어 일정을 계획하고 왔는데, 운이 좋게도 매일매일 아름다운 오로라를 만나게 된 것이다.


캐나다 에드먼튼 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옐로나이프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무렵이었다. 7,8월 하절기에는 밤늦은 시간까지 해가 떠 있는 ‘백야’로 인해 오로라를 관측하기가 쉽지 않아서 오로라 빌리지가 운영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찾은 9월은 그래도 저녁 7-8시경에는 해가 지기 때문에 밤 10시부터는 캄캄한 상태에서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었다. 주변에 산지나 높은 지형이 없는 평탄하고 광활한 지대라서 그런지 노을이 지는 시간이 굉장히 길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지기 시작하면 어느새 10분 이내에 노을이 지평선 너머로 순식간에 넘어가버리곤 했는데, 이곳 옐로나이프에서는 노을이 30분 이상, 체감상 한 시간 가까이 지속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노을로 물드는 것을 바라보면서, 날이 맑으니 오로라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오로라 투어를 떠날 채비를 했다.



밤 10시경, 호텔 로비로 픽업 온 오로라 빌리지 투어 버스에 탑승하면 잉그램 트레일을 따라 약 30분간 이동하게 된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영어 등 각국 언어의 가이드가 국가별로 나뉘어 투어 버스가 꾸려지기 때문에 모국어로 설명을 들으며 편리하게 투어를 할 수 있다. 첫날밤 우리 버스의 담당 가이드는 우리를 공항에 픽업 나와주었던 20대의 상냥한 한국 여자분이었다. 주변에 밝은 빛이 있으면 오로라 관측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오로라 빌리지 주변에서는 수십 킬로미터까지 어두운 조도를 유지하고 있어서 가는 길은 내내 굉장히 어둡고 캄캄했다.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오로라 빌리지의 모습이 어떨지,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 너무나 춥지는 않을지 사뭇 긴장되고 마음 한켠에는 두려운 마음조차 들기도 했는데, 앳된 목소리의 명랑한 어조로 듣는 모국어는 반갑기도 하고 어딘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구석이 있었다. 아마도 수십 번쯤 같은 문장을 반복했을 단조로움마저 느껴지는 단정한 어투의 설명을 들으며 버스는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했다.   

 



첫날은 모든 게 신기하고 낯설었다. 밤하늘 가득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수많은 별들, 애써 억지로 찾지 않아도 자꾸 나를 따라다니는 북두칠성부터 백조자리, 카시오페아, 오리온자리 등 수많은 별자리들. 추석 직전이라 가득 차올라 환하게 빛나던 달은 달빛이 눈이 부실 수도 있다는 걸 알려줬다. 처음 보는 티피도 귀여웠고, 달빛이 비쳐 아름다운 호수와 호수가를 가득 메운 침엽수들은 몽환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색다른 정취에 취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하늘에 초록빛 아지랑이 같은 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안개 같기도 하고 연기 같기도 한 이 초록빛이 오로라구나 라는걸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알 수 있었다. 오로라를 본 것도, 사진으로 찍어본 것은 더더욱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상태로 일단 적당히 셔터를 누르며 나의 첫 오로라를 마주했다.





녹색빛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초록색 연기 같기도 한 것이 천천히 밤하늘에 퍼져나갔다. 별이 가득한 하늘을 서서히 메운 초록색 연기는 짙은 녹색에서 점점 밝은 연두색으로 빛이 진해져 갔고, 어떤 부분은 새하얀 띠 같은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굉장히 밝아서 그 부분은 별이 가리어져 잘 보이지 않았다.



굉장히 낯선 느낌이었다. 심박수는 빨라져 가슴은 콩닥콩닥 뛰는데, 예상했던 것만큼 격렬한 감정적인 반응은 없어서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생에 첫 오로라를 만나면, 다른 사람들의 표현처럼 ‘온몸에는 전기가 오른 듯 찌릿한 느낌이 들면서 소름이 돋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겠지’라고 나의 무의식은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눈앞의 하늘에 일렁이고 있는 이 초록빛 기운이 무척 신기하고, 생경한 풍경이 경이로우면서도 의외로 담담한 듯한 나 자신이 조금은 어색한 기분이었다. 다만 그 여운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까지도 이렇게 짙게 계속되리라고 그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체감상 한 10분에서 30분 정도 강한 초록빛을 뽐내던 오로라는 서서히 빛을 잃어갔고 어느새 언제 뭐가 있었나 싶게 사라져 갔다. 미처 오로라를 맞이할 준비가 채 되기도 전에,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하자마자 몇 분 되지 않아 어리버리한 상태로 호숫가를 배회하고 있을 때 아무런 기척도 없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던 오로라는 출현만큼이나 또 예고 없이 갑자기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빛이 옅어져 가는 것을 눈치챈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오로라는 금세 그 빛을 잃어버렸다.




어느덧 밤하늘에는 별만 가득 남았다.



처음에 제법 짙고 예쁜 모양의 오로라를 보고 나서 언제 다시 나타나려나, 더 멋진 게 있겠지 하며 이 언덕 저 언덕을 오가며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봤는데 그날 밤 우리가 오로라 빌리지에 머무는 동안 오로라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중간에 다시 약간의 초록빛이 하늘에 비치긴 했으나 처음보다는 훨씬 약한 빛이었다. 어렴풋한 오로라마저 사라지고 나서, 약간 지치고 낙심한 마음으로 티피에 돌아가 컵라면을 먹고 핫초코를 먹다가 아쉬운 마음을 안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래도 난생 첫 오로라를 내 눈으로 직접 봤다는 설레임에 쉽게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한참을 포근한 침대에 누워서 오로라의 여운에 잠겨있었다. 옆에 누워있는 신랑의 등짝을 긁적이기도 하고 토닥이기도 하며

‘참 굉장했지’

‘응 멋있었어, 내일은 더 멋질 거야’

‘오로라가 춤을 추기도 한다는데. 내일은 춤을 출까?’

‘분홍색 오로라도 있대’와 같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사진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