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시리게 아름다운 이야기
병원에 갔다. 아들녀석이 여름인데도 에어컨을 많이 쐐 감기에 걸렸다.
동네에서 까칠하기로 유명한 이비인후과.
할아버지가 진료하시는데 환자 말을 절대 듣지 않고,
같이 일하는 간호사들에게도 말을 함부로 하셔서.
손님이 별로 없는 병원이다.
(그러기에 나는 선호하긴 한다.)
아들 진료 순서를 기다리면서 병원에 꽂힌 책을 읽었는데,
어머 이 의사선생님 수필집을 내신 작가였다.
작가 본인의 자전적 에세이를 병원에 전시해 놓은 것이다.
찬찬히 선생님의 글을 읽어보고 놀랬다.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해 회상하는 글이었는데,
선생님에게 (보통 깐깐하고 말투도 퉁명스러워) 저런 감성적인 면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로부터 6개월뒤 병원에 또 찾았다.
역시 아들녀석의 감기.
못보던 책이 꽂혀 있었다. 민트색 표지의 "눈물꽃소년"
책에 "~함씨롱" 하는 그 남도 사투리가 정감있고 구수하고 따뜻했다.
작가를 보니 박노해 시인이었다.
다시 뒷 표지를 보니 그가 배운 모든 것은 이 소년시절 흙가슴내 나는 사람들에게서 였다고 적혀 있었다.
어느새 아들 진료 순서가 됐고, 처방전을 받아 병원을 나오며 책과 아쉬운 잠깐의 이별을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근처 도서관으로 상호대차를 신청해놓고,
책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받아든 책.
잔잔한 수필인데도 몰입감이 있고 이야기 하나하나가,
그곳에 담긴 사람들의 말이, 마음이 아침에 기도드리는 정수처럼 맑디 맑은 책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 어떻게 박노해 시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었는지,
"과거를 팔아 미래를 사지 않겠다"는 말을 했는지.
노동운동을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그 진심이 이해가 간다.
이리 선하게 사는데 하느님은 왜 자꾸 시련만 주시는지 야속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성하게 사는 이들의 삶이란.
그런 정신에서 나온 글과 시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내가, 나의 삶이 나의 시와 같아야
그게 진정한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순간 나는 책속에 기평이가 아니라 반 친구들처럼 휩쓸려 살진 않았는가.
살아가는게 아니라 살아져간게 아닌가 반성했다.
눈물꽃소년에 나온 이들과 같은 성정을 아들녀석이 갖기를 바라며,
자기전 아들에게 책 챕터를 읽어주었다.
말이 없이 잠드는 우리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