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필사노트

"맞아 중앙분리대는 기호가 아니라 물질이거든. 반면 중앙분리선은 물질이 아니라 기호이고, 똑같은 분리의 역할을 해도 콘크리트로 중앙분리대를 만들어 못 가게 하는 것은 자연계로 규제하는 것이야. 반면 선이라는 기호를 긋는 건 법으로 금지하는 거지. 기호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법이 필요하거든. 이 세상은 자연계, 기호계, 법계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져 있다네. 이 세가지는 전혀 다른 세계야. 이걸 이해해야 우리는 혼돈없이 세계를 보고 분쟁 없이 대화할 수 있어"

"섞이면 어떻게 되죠?"

"오늘부터 법으로 코로나를 금한다! 이런 황당한 논리가 나오는 거지....... 바이러스에게 벌금을 물릴 수 있어? 안된다고. 치료하는 인간드의 법은 만들 수 있지. 그것은 법계의 영역이야. 방역 시스템은 법과 제도의 논리인데. 그것을 마치 자연계의 일처럼 진리로 소통하면 안돼. "




"선생님! 일상에서 생각하는 자로 깨어 있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연습을 해야합니까?"

"뜬소문에 속지 않는 연습을 하게나. 있지도 않은 것으로 만들어진 풍문의 세계에 속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 진실에 가까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네. 그게 싱킹맨이야.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어린아이첨럼 사고해야 하네. 어른들은 머리가 굳어서 '다 안다'고 생각하거든 '다 안다'고 착각하지 아이들에게 '쓸데없는거 묻지 말라'고 단속을 해. 그런데 쓸데없는 것과 쓸데 있는 것의 차이가 뭔가? ...... 그건 누가 정하는 거야? 인간이 표준인 사회에는 세상 모든 것을 인간 잣대로봐. 그런데 달나라에 가면 그거 다 소용 없다."



"그런 의미에서 기록자들, 작가나 예술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야. 도덕자나 지식자가 아니라네. 감추고 싶은 인간의 욕망, 속마음을 광장으로 끌어내 노출시키는 사람들이지. 거울로 비춰주는 거야. 보통 사람은 비참한 자기 얼굴을 안 보려고 해. 흐린 거울이나 깨진 거울로 보지. 직면할 용기가 없으니까. 예술가만이 일그러진 자기 얼굴을 똑바로 봐."

......

"자기 삶이 사소하면 사소한 대로 비루하면 비루한 대로 정직하게 기록하는 인간들이야말로 담대한 사람들이죠. 일본 문단이 부러운 게, 그런 사소설 분야가 잘 발달돼 있어요."

"무라카리 하루키가 잘하더구만."

"새로운 이야기보다 그 기록의 태도에 반응하는 것 같아요. .... '일상을 꾸준히 정확하게 기록하고 싶다'는 욕구가 자주 보여서요. 정확할수록 공감과 차이를 다 이끌어낼 수 있어서겠죠?"

"정확성보다는 솔직성이 우선이네. 솔직해야 정확할수 있어"


"인간이 선하냐, 악하냐...... 논의가 이렇게 흐르게 되면 그건 윤리적 판단이지. 진의 세계에 들어가면 선악과는 달느 차원으로 그게 진짜냐. 가짜냐.로 갈라져. '참인가 거짓인가'는 생각을 다루는 인지론이고 '착한가 악한가'는 행위를 다루는 행위론이야. 선악은 행위를 통해서만 드러나거든.

그런데 아름다움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또 달라져. 살인자여도 잘생긴 사람 있잖아. 그건 윤리하고도 관계없고 진리하고도 관계없어. 아름다움과 추함은 또 다른거라네. 참을 다루는 진도 행위를 다루는 선도 아니야. 제 각자 미를 느끼고 판단하는 것은 표현의 영역이라네.

생각을 다루는 인지론. 실천을 다루는 행위론 표현을 다루는 판단론. 인간으로 풍부하게 누리고 살아갈려면 이 세가지 영역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네."


나는 오랫동안 화려한 패션지에서 일했다. 내 27년 기자 경력중 21년이 패션지에서의 삶이었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의상, 색색깔로 늘어선 화장품, 파티, 유명 인사, 사진작가와 스튜디오 카메라, 조명, 샴페인, 과장되게 친절한 홍보 전문가들의 웃음......속에 둘러 싸인 채로, 내 삶엔 '시늉'이 많았다. 완벽하게 꾸며진 세트에서 비현실적인 가격의 옷을 입고 미소를 짓는 서구의 모델들 ......그 모습이 내가 재현하려는 '비주얼'이었고, 사진작가와 촬영 스태프는 마치 그것이 우리의 삶인 것처럼 진심을 다해 그것을 '베꼈다.'

내 삶으로 누리지 못하면서, 그 물에 한발을 담그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했던 시절. 한편으론 마치 그 탐스러운 것들에 초연한 척 진지하고 교양 있는 글로 나를 포장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 다리를 딛고 그림처럼 서 있는 홍학처럼. 비단과 누더기를 함께 기운 천 조각처럼 나의 내면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불균질했고 아슬아슬했다.

'내 고향은 달동네. 너무 비루해서 반짝이는 거라곤 별빛밖에는 없지.'

가난과 결핍을 들키지 않으려고 어린 시절부터 시늉이 체질화된 삶을 살던 나는, 그 시늉이 삶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직전에, 버블낀 청담동을 떠나 잉크 냄새 진동하는 광화문에 정착했다.

내 인생의 거품경제 시절을 지나갔지만, 한동안 나의 환경을 지배했던 '럭셔리'가 무엇인지. 스승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럭셔리한 삶......나는 소유로 럭셔리를 판단하지 않아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네.'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지."

......

"대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다 여기까지 왔어요. 혼자 쓴 글인 줄 알았지만, 글도 말도 함께 낳은 것이었다는 깨달음이요......"


"길 잃은 양은 자기 자신을 보았고 구름을 보았고 지평선을 보았네. 목자의 엉덩이만 쫓아다닌 게 아니라. 멀리 떨어져 목자를 바라본 거지. 그러다 길을 잃어버린 거야. 남의 뒤통수만 쫓아다니면서 길 잃지 않은 사람과 혼자 길을 찾다 헤매본 사람 중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다. 길 잃은 양은 그런 존재라네. ......"

"앙드레 지드가 서른여덟 살에 쓴 단편이 '탕자, 돌아오다'라네. 그걸 읽으며 나는 눈물을 흘렸어. 집 나갔다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에게 차마 못 한 말을 어머니에게 고백하지.

'나는 아버지가 잡아주는 기름진 양보다 가시밭길 헤매다 굶주림 속에 따먹은 썩은 아가베 열매가 더 달았어요'라고

동생과 형의 대화도 말할수 없이 깊어. 동생이 그러지"

'집 나간 형을 생각하고 그 꿈을 꾸며 살았는데, 형이 돌아오면 나는 어떡하느냐.'

'미안하다. 나는 실패했지만, 너는 떠나라. 나는 실패했지만 너는 돌아오지 말아라. 낯선 곳에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살아라. 내가 도와주마.'

...... 예수 자체가 바고 예수잖아. 보통사람의 눈에는 예수가 바보가 아니고 뭐겠나. 바보니까 그렇게 죽지, 누가 그렇게 죽어. 그런데 예수의 바보스러움, 앙드레 지드의 이 바보스러움, 스티브 잡스가 '스테이 풀리시'라고 할 때의 그 바보스러움을 자네는 깨달아야 하네."


"무슨뜻인지 알겠나? 정해진 대로 살면 그게 정복 행복일까? 아니야. 가짜 행복이네 길 잃은 양이 된다는 것은 자기 의지대로 '큰 감자와 작은 감자'의 기준을 만드는 일이라네. 화문석을 짜는 일이야. 돈을 받는 노동이라도 자기 생각이 들어가 있고 자기만의 성취의 기준이 있어. 그때 비로소 그림자 노동에서 벗어나는 거야. 예술가가 되는 거야. 노동을 하는 순간에도 예술을 하고 있는 거야.


"선생님, 평소에 보통 사람은 영성을 어떻게 느낄 수 있나요?"

"보통은 몰라. 엷은 막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지. 빌로드 바지를 입고 걸을 때 스치듯 나는 소리가 있다네. 사악사악, 있는 듯 없는 듯한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예민한 사람이 많지 않아. 엷ㅅ은 막들이 스치듯 엉키는 소리, 그 엷은 막이 뚫릴 때 쏟아지는 영성의 물성을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 프랑스 지하철 노선에 트로카데로라고 있거든. 이 노선은 지하철이지만 유일하게 바깥으로 한 번 나왔다 들어가지.

처음 파리에 갔을 땐 그런 정보를 전혀 몰랏어. 프랑스 지하철이 오죽 컴컴해. 그런데 한참을 가다가 그 지하 굴에 어느 순간 물이 쏟아져 들어오듯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거야. 언제 바깥으로 나왔는지도 몰랐는데, 순식간에 빛의 샤워를 받은 거야. 그 순간 어떤 성스러움이 느껴졌어."

"....... 그 외국에서, 그 지하에서, 예상하지 못했으니 더 놀랍지. 빛이 물처럼 덮치듯, 신도 그렇게 갑자기 우리에게 온다네. 준비해도 안올 수 있고, 준비 안 해도 올수 있어. 하나님은 우리를 갑작스럽게 방문하시지. 마치 재앙이 예고 없이 덮치듯, 신의 구제도 그렇게 오는 거야. 사랑도 행복도 영성도 그렇게 갑작스럽게 우리를 덮치는 거라고 나는 느껴."


"지금도 나는 글을 쓸 때 그런 어린아이의 세계를 느껴. 내 글 중에도 영감과 영성으로 쓰여진 글이 있고 억지로 지식으로 짜맞춘 글이 있어 설명할 수는 없어도 신들린 듯이 쓴 글에는 영성의 빛이 있는데, 사방의 지식을 가지고 쓴 글은 아무리 절묘하게 썼어도 감동을 주지 ㅇ낳아. 글 ㅆ느느 데도 운이 있고 영성의 담금질 이 있는 걸세. 그건 모든 글 쓴느 사람들의 공통의 경험이야. 깜ㄲ마한 공백속에서 도저히 풀리지 ㅇ낳다가 어느 순간 탁 빛줄기가 쏟아지지."

"지하철이 불현듯 땅위로 올라와 빛의 샤워를 받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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