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년 가장의 스타트업 취업 도전기 (01)

by 나한류



MBA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 스타트업(Start-Up).


그 단어는 늘 답답한 대기업 명함을 버리고 '성장'과 '혁신'을 꿈꾸는 용감한 이들의 상징이었다. 오래 전, 벤처기업은 절대 오지 말라고 했던 대학교 선배는 입사 4년 만에 스톡옵션으로 부자가 되어 지금은 큰돈을 깔고 앉은 '파이어족'이 되었다. 남들은 그런 성공 신화에 열광했지만, 비빌 언덕 없는 40대 가장인 나에게 스타트업은 늘 손에 닿지 않는 환상이었다. MBA 과정 중에 창업했다가 망한 동문들의 씁쓸한 뒷모습은 그 환상을 좇지 못하게 만드는 현실의 족쇄였다.


44세. 고액 연봉의 대기업 차장.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타이틀. 그것이 전부였다. 솔직히 대기업은 편했다. 아니, 편하게 느껴지도록 세뇌되었기에 딴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그저 안정된 항로를 묵묵히 항해하는 거대한 유조선 속의 부속품이었다.


그러던 중, 40대 중반에 드디어 내 항로를 강제로 이탈할 시간이 생겼다. 바로 '어이없는 지방 발령' 덕분에.


가족이 있는 서울로 되돌아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곳은 강제로 보내지 않으면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곳이었고, 나를 대신해서 누군가를 보낼 일도 없었다. 심지어 그곳의 어린 직원들만 하나 둘씩 서울 본사로 발령 났다. 드디어 결심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이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내 발로 당당하게 걸어 나가리라. 20년 동안 쥐고 있던 대기업 명함을 놓아주기로 했다.


얼마 후, 헤드헌터 회사를 창업한 대학교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좋은 자리가 있다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었다. 심지어 나와는 절대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스타트업'이었다.


휴가를 내고 5시간을 달려 서울에 도착했다. 어쩌면 남은 인생을 그토록 동경했던 스타트업의 마케팅 담당 이사로,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이 솟아올랐다.


선릉역 주변 어느 건물 2층.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대기업의 격식 있는 로비와는 거리가 먼, 어딘가 어수선하고 활기가 넘치는 공간.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이 가득 붙은 유리 벽을 지나, 직원의 안내에 따라 대표이사실로 들어갔다.


그것이 내 20년 직장 생활과는 완벽하게 다른, 스타트업 세계와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