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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월요편지

사기꾼의 무기, 통계의 함정

구석기인들을 부러워하며

by 이충호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았던 구석기인들의 평균 수명이 21세에서 37세 사이라고 한다. 2016년에 태어난 한국인의 기대 수명이 82세라니 우리는 그들보다 두 배 이상의 수명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실일까? 여성의 신체 여건을 고려하면 10대 후반을 지나야 임신과 출산이 가능할 텐데 20~30대에 수명을 다해 하데스의 땅으로 내려갔던 우리의 선조는 신통방통하여 가임 기간도 앞당겼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 2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약 1만 년 전 농경이 출현하면서 끝났다고 알려진 구석기인의 평균 수명은 72세 전후였고 성인 남자들의 평균 키도 지금 우리와 비슷한 170cm 정도였다. 기름지지 않고 거칠기만 했을 원시인들(?)의 음식을 가엽다 여기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철철이 다양한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곡물을 주식으로 삼은 농경사회인들보다 더 건강했을 것이다. 주기적으로 식량을 찾아 이동하였기에 폐기물이 쌓이는 환경을 만들지 않았고, 혈연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공동체 무리에는 전염병이 뿌리내릴 틈도 없었을 것이다. 부족 간 싸움, 몸에 입은 상처, 맹수의 습격 등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할 가능성이 우리보다 더 높았을 뿐이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매년 1% 정도의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사망률은 6~9년마다 두 배씩 증가했고 40세 구간에서는 사망자가 좀 더 늘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수렵채집인은 68~78세 구간에서 가장 많이 죽었다. 이것이 ‘전체’ 수렵채집인 평균 수명 37세와 ‘타고난 수명을 누렸던 일반적인’ 수렵채집인 평균 수명 72세의 진실이다. 즉, 수렵채집 사회에서 죽은 자와 산자의 수명 전체를 모두 더해 사람 수로 나눈 값은 37이지만 살아 있는 수렵채집인의 기대 여명 최빈(最頻)값은 72라는 뜻이다.

이처럼 기계적으로 대입해서 나오는 평균값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중요한 정보를 담은 최빈값을 죽이기도 한다. 통계의 함정이다. 그 덫을 벗어났을 때 비로소 보인다, 별 탈 없이 보통의 삶을 살았던 수렵채집인이 내 아버지처럼 72세를 전후해서 가장 많이 죽었다는 사실이.

일본 후생노동성이 지난 15년간 노동통계를 ‘조작’했다는 소식이다. 전수 조사해야 하는 임금실태 등에 관한 근로 통계조사를 표본조사로 바꿔 노동자들에 지급해야 할 고용보험금 등 약 5천300억 원을 적게 지급했다고 한다. 통계가 왜곡된 탓에 실제 2.8%였던 지난해 6월 임금상승률은 (18% 부풀려진) 3.3%로 발표되어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이라며 아베노믹스 고용정책 성과 홍보에 이용되었다.

이는 아베 총리의 의중을 헤아린 비서와 공무원들의 ‘손타쿠(忖度·촌탁: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가 작동한 결과였다. 윗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긴’ 것이다. 정부 정책에 신중론을 제기한 간부들이 좌천되고 정권의 스캔들을 막아낸 간부들이 승진하는 사례가 하나둘 나타나면 ‘알아서 기는’ 공무원들만 살아남는다.

통계의 운명은 함정이다. 통계 수치를 들이미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우둔하게 빠져들기도 한다. 동해 저 너머의 관습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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