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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월요편지

오지라퍼에게 고(告)함: TMI

파스칼 키냐르: 고독 없이 기쁨이란 없다

by 이충호

2016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주승용 의원은 통상 55분 걸리는 김포-여수 노선에서 비행기가 지연 출발했음에도 36분만 에 도착했다며 “비행기의 과속 관련 안전수칙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주 의원에 게는 비행시간과 항공기스케줄(Block Time)의 개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격 없는 국 토교통위원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블록타임은 비행기가 출발을 위해 지상에서 움직이기 시작한(Ramp-out) 시각부터 목적지 공항에 도착해 승객이 내릴 수 있는 장소까지 이동해 멈춰서는(Ramp-in) 시각까지의 시간으 로 순수한 비행시간과 다르다. 당시 주 의원이 주장했던 노선에서 가장 빠른 비행시간은 32분, 가장 늦은 비행시간은 44분, 평균 38분이여서 36분은 그저 보통의 비행시간에 불과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 당에 화재가 발생하자 “불을 끄려면 아마 공 중살수가 유용할 수 있으니 빨리 행동해야 한 다”고 트위터에 올렸다가 조롱을 당했다. 프 랑스 소방당국이 “공중에서 대성당 위로 물 을 뿌리는 것은 건물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 을 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건물의 2차 붕괴 로 이어질 수 있다”고 즉각 반박했기 때문이 다. CNN은 이런 비극에 대해 미국의 역대 대 통령들은 충격과 슬픔을 표시하며 도움의 손 길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며 트럼프 에게 훈수까지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생일”을 관람 하고 간담회를 가졌다. “고통은 비교하면 안 된다. 위로한답시고 더 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이 있다고 말하면 안 된다. 3년 동안 (세월호)가족들을 만나면서 얻은 결론이 ‘함부로 위로하지 말자’였다. 가 족들은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고통을 겪고 있 다고 생각한다. 남의 잣대로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곧 나아질 거라고 말하는 것도 안 된다. 그러면 뭘 해야 하는가? 옆에 있어줘야 한다.”

SNS 공간을 마치 자신의 안방처럼 사용하 는 사람들 때문에 피곤한 시대다. 오지라퍼 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단순한 소통을 위해 열 어 놓은 단체 톡방에서 백과사전식 지식을 나 열하며 ‘에헴!’ 하는 한량들로 머리가 아프다. 너무 과한 정보(TMI: Too Much Information) 라는 말이 종종 쓰이게 된 이유다. 매우 부정 적이고 역겹거나 이상한 말을 한 상대방에게 “그래서?”, “신경 끄시지!”라는 뜻으로 흔히 이 말을 쓴다.

사랑받지 못해서 불안한 건지, 자존감 과잉 인지 결핍인지, 그들의 눈동자는 다른 사람들 에게 확인받고 싶어 빛난다. 하지만 자신의 정 체성과 가치관을 세우지 못해 휘날리는 오지 랖은 유치하기만 하다. 그들을 ‘어엿비’ 여겨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의 《떠도는 그림자들》 중 한 구절을 전해볼까 한다.

“고독 없이, 시간의 시련 없이, 침묵에 대한 열 정 없이, 온몸으로 흥분과 자제를 느껴본 적 없 이, 두려움에 떨며 비틀거려본 적 없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무엇 안에서 방황해본 적 없이, 동 물성에 대한 기억 없이, 우울함 없이, 우울해서 외톨이가 된 느낌 없이 기쁨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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