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국내 한 도로에서 그랜저를 닮은 의문의 차량이 포착되었다. “이거 그랜저 아닌가요?”라는 반응들이 쏟아졌는데, 사진을 자세히 보니 뭔가 달랐다. 얼핏 보면 그랜저 튜닝카로도 보이는 이 차의 정체는 바로 ‘닷지 차저’였다.
그랜저 IG가 출시될 당시, “그랜저 IG 아니고 닷지 차저 아니냐”라는 반응들이 정말 많았다. 그만큼 디자인적으로 많은 부분들이 닮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차저보다 그랜저가 더 익숙하다보니, 이후 거리에서 차저가 보이면 “그랜저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오해로 더 유명해진 닷지 차저는, 사실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뼈대 있는 모델’이다. 오늘은 닷지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과연 그 명맥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을지 알아보고자 한다.
1966년생
닷지 차저 1세대
닷지는 2도어 쿠페로 1966년에 탄생했다. 지금과는 다른 형태지만, 초기 차저는 머슬카 ‘닷지 코로넷’을 기반으로 한 롱 휠베이스 모델이었다. 초창기 닷지 차저는 엔진 라인업이 다양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았던 것은 ‘426 헤미’ 엔진이었다. 나스카 레이싱에 출전했던 차량의 엔진을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 7,000cc 배기량에 출력은 무려 425마력이었다.
1968년에는 기존 크라이슬러의 B-보디를 기반으로 한 2세대 차저가 등장했고, 1969년에는 그릴 중앙에 스플릿을 추가한 모델이 나왔다. 특히 이 1969년식 차저는 영화 ‘분노의 질주’에 등장하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후 닷지는 나스카에 차저를 내보내기 위해, 레이스용으로 공기 저항을 개선한 ‘차저 500’을 출시했지만 성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스포츠 세단으로
강렬한 변신을 하다
가장 인기 있었던 엔진인 ‘426 헤미 엔진’이 마지막으로 장착된 3세대 차저는 1971년에 등장했다. 2세대 차저와 함께 가장 역사적인 모델로 꼽히는 3세대 차저는, ‘슈퍼비’ 옵션이 독특한 특징 중 하나였다. ‘슈퍼비’는 1971년 한 해 동안만 존재한 사양으로, 앞뒤 스포일러가 추가되고 후드에 벌 한 마리가 올라가는 옵션이다. 그러나, 4차 중동전쟁과 석유 파동 등으로 판매량에 타격을 입으며 1973년 이후 판매량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후 4세대와 5세대를 지나 ‘스포츠 세단’의 모습으로 6세대 닷지 차저가 등장한다. 6세대 차저는 LX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2.7L 엔진부터 6.1L 엔진까지 다양한 엔진 라인업을 갖추었다. 세단으로 등장한 6세대 차저도 영화 ‘분노의 질주’에 등장했다.
그랜저 느낌이 나는
7세대 페이스리프트 모델
“그랜저 아니야?” 닷지 차저 중 그랜저로 자주 오해 받는 모델은 7세대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우선 페이스리프트 진행 전, 2010년에 등장한 7세대 모델을 알아보자. 7세대 차저는 2세대 차저로부터 파생된 머슬카 룩을 지향하며, 보닛과 측면에 주름을 넣어 강인한 느낌을 전달했다. 또한, 기존 테일램프를 없애고 풀-와이드 테일램프를 탑재한 것도 특징 중 하나다.
이후 2014년, 7세대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등장한다. 외부 디자인이 크게 바뀌었는데, 헤드램프 앞쪽으로 돌출되었던 그릴이 안쪽으로 들어간 것이 큰 특징이다. 또한, 윈도 몰딩과 프런트 그릴을 검정으로 처리했고 안개등과 헤드램프, 테일램프를 LED로 변경했다. 닷지에서 ‘레이스 트랙 테일램프’라고 부르는 이 테일램프가 그랜저와 차저를 닮아 보이게 하는 장본인이다.
숨겨진 본능을 드러낸
'차저 SRT 헬캣’ 등장
한때 세계에서 유일한 4도어 머슬카로 불렸던 차저가 강력하게 돌아왔다. 2014년, 고성능 6.2L V8 엔진을 탑재한 차저 SRT 헬캣이 출시되며, 머슬카 시절의 차저를 그리워하던 소비자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차저 SRT 헬캣은 최대 출력이 무려 707마력이며, 최대 토크는 89.9kg.m이다. 이 토크는 출시 당시 크라이슬러에서 생산된 V8 엔진 중 가장 강력하다.
또한, 차저 SRT 헬켓에는 고성능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0-100-0 마일 가속 및 제동이 13초만에 끝난다. 게다가 최고 속도는 약 328km/h이며, 피렐리 P 제로 도로용 타이어를 장착하고 400미터 트랙을 11초만에 완주하기도 했다.
부실한 라인업과
소식 없는 풀체인지
이렇게 유서 깊은 닷지이지만, 최근 여러 문제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그 문제점 중 하나는, 보유한 모델의 라인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잘 나가는 픽업 트럭 브랜드 ‘램’은 닷지를 떠나 별도 브랜드로 독립했고, 닷지에게 남은 것은 준중형 세단 네온과 차저, 준대형 SUV 듀랑고, 머슬카 챌린저로 총 4종뿐이다. 유명했던 다트와 매그넘, 바이퍼 등은 단종의 길을 걸었다.
게다가, 닷지가 현재 생산하고 있는 모델들은 모두 10년 이상 풀체인지를 거치지 않았다. 오직 페이스리프트만 진행해 온 것이다. 차저와 챌린저는 2015년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한 후, 연식변경만 해오고 있으며, 듀랑고는 2011년 출시 이후 9년이 지난 재작년에야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했다. 참고로, 네온은 2016년 3세대 모델이 출시되었으나 2005년 북미에서 단종된 이후 피아트 티포에서 엠블럼만 바꿔 해외 전략 모델로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예외로 두겠다.
신차 개발 없이
배지 엔지니어링만 하고 있는 닷지
닷지의 해외 출시 모델들은 대부분 배지 엔지니어링인 경우가 많다. 배지 엔지니어링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독자 모델보다 배지 엔지니어링 모델 비율이 더 높으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네온은 피아트 티포를 배지 엔지니어링한 모델이다. 또한, 곧 남미에 출시될 저니도 중국 자동차인 G55를 배지 엔지니어링 했다고 밝혀졌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북미 내에서 닷지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난 6월 기준으로 닷지는 2만 1,040대가 판매되었는데, 이는 미국에서 파이가 적은 벤츠나 폭스바겐보다 낮은 수치이다. 현대기아차와 비교해도 3분의 1수준의 판매량 밖에 되지 않는다.
2024년
전기 머슬카 공개?
‘친환경’이 자동차 업계의 뜨거운 키워드가 되면서, 각 완성차 업체들은 앞다투어 전기차나 수소차 등 친환경차를 출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닷지는 아직 전기차 라인업을 구축하지 못한 상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닷지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닷지는 지난 7월 열린 스텔란티스 EV 데이에서 2024년에 세계 최초 순수 전기 머슬카를 출시하겠다고 밝히며, 전기 머슬카의 실루엣을 공개했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에 비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닷지가 나름대로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져 닷지의 매니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랜저와 비슷한 닷지 차저의 모습에 네티즌들은 뜨거운 관심을 보내고 있다. “이거 완전 차(랜)저다”, “자꾸 그랜저랑 닮았다 하면 그랜저 차주 울어요”, “그랜저가 좀 세네”, “고성능 그랜저”, “순간 진짜 그랜저 튜닝카인줄 알았다” 등 그랜저와 정말 닮아서 놀랐다는 유쾌한 반응들이 이어졌다.
또한, 닷지의 현 상황에 대해서는 “할말은 많은데 하지 않겠다”, “닷지 머슬카 감성은 따라올 수 없는데, 잘 좀 버텨봤으면”, “신차 개발할 생각 없으면 풀체인지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등 닷지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랜저와 닮은 모습으로 눈에 띄었지만, 사실 오랜 전통과 특유의 감성을 간직한 ‘닷지 차저’의 명맥이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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