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00km를 넘나드는 F1 경기는 세계 최고의 기술과 전략이 집약된 무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마니아층에 국한된 그들만의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하다. 복잡한 규정, 익숙하지 않은 팀과 드라이버, 낮은 중계 노출 등이 그 이유다.
그런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F1 더 무비(F1: The Movie)’ 가 개봉하며 F1에 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영화가 개봉한 비슷한 시기에 작중 주인공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처럼 니코 휠켄베르크 선수가 선수 생활 15년 만에 포디움에 입성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오래 걸렸던 피트스톱에도 불구하고 그가 포디움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타이어’에 있다. 그만큼 F1의 세계에서 타이어란 경기의 순위를 결정짓는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말할 수 있다.
부품이 아닌 ‘승부수’, 타이어
일반 도로 위에서는 타이어는 한 번 장착하면 수천 km를 달리게 해주는 소모품이다. 그러나 적어도 F1에서는 아니다. 실제로 많은 팀이 타이어의 마모 속도와 주행 온도, 노면 적응도를 분석해 언제 교체할지, 어떤 컴파운드를 쓸지 결정한다. 이 결정은 1초 단위로 승부가 갈리는 경기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팀은 초반 속도를 위해 빠르지만 내구성이 낮은 소프트 타이어를 선택하고, 다른 팀은 후반 추격을 위해 소프트 타이어보다 느리지만 피트-인을 거의 안 해도 되는 하드 타이어를 선택한다. 타이어 전략만으로도 극적인 순위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자동차 레이스가 아니라 전 세계의 수재들이 치열하게 맞붙는 과학적 전쟁임을 보여준다.
경쟁의 탄생, 브랜드의 전장
F1이 처음부터 타이어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20세기 중후반까지만 해도 타이어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주행을 위한 조건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점차 기술의 발전과 규정의 세분화가 이뤄지며, 타이어가 ‘전략의 축’으로 격상되기 시작했다. 팀들은 동일한 자동차라도 어떤 타이어를 장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주행 성능과 결과를 얻게 됐고, 이때부터 타이어 제조사 간의 경쟁도 본격화했다.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는 브리지스톤, 미쉐린, 굿이어 등 다양한 브랜드가 각 팀과 계약을 맺고 성능 차별화를 노렸다. 이는 F1을 더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타이어 간 격차로 인해 특정 브랜드에 유리한 판세가 형성되는 문제도 발생했다. 이는 당시 브리지스톤의 타이어와 궁합이 좋았던 페라리가 F1을 지배하게 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타이어가 변수이자 논란이 된 것이다.
단일 공급 체제로의 전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F1은 2007년부터 단일 타이어 브랜드 공급 체제를 도입했다. 현재는 이탈리아의 피렐리가 공식 타이어 공급사로, 모든 팀에 균등한 조건의 타이어를 제공하고 있다. 덕분에 타이어 그 자체의 성능보다는,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전략적 요소가 더 강조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단일 공급은 타이어 자체에 대한 논란을 줄였지만, 타이어를 둘러싼 연구와 데이터 해석 경쟁은 오히려 더 뜨거워졌다. 동일한 타이어를 가지고도 어떤 팀은 마모를 최소화해 오래 쓰고, 어떤 팀은 최적의 열을 유지해 가장 빠르게 달린다. 즉, 같은 장비로 다른 결과를 내는 운영력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엔진보다 치열한 타이어의 전쟁
결국 F1에서 타이어는 단순한 고무 덩어리가 아니다. 더 빠른 차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똑똑하게 타이어를 활용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F1 더 무비’의 주인공처럼, 피트 스톱 하나로 흐름이 뒤집히고, 타이어 컴파운드 하나로 희비가 엇갈린다. 바로 그 안에 수백 명의 전략가와 엔지니어가 숨겨져 있고, 타이어는 그들의 전략을 구현해 내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다.
F1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피트스톱 하는 장면에 집중해 보자. 승부는 언제나 디테일에서 갈린다. 드라이버가 차를 몰고 나가 트랙 위를 지배하기까지, 수많은 숫자와 데이터, 온도와 마찰이 계산된 끝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그 타이어다. 그리고 그 작은 원 하나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순위를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