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2025년 상반기 국내 자동차 판매량 순위가 공개되면서, 예전과는 전혀 다른 흐름이 확연히 드러났다. 내연기관 세단이나 대형 SUV가 아닌, 전기차 중심의 소형 모델들이 상위권을 휩쓴 것이다.
특히 기존 시장에서는 ‘틈새차종’으로 분류됐던 경형 전기차와 실용 전기 SUV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는 기아와 테슬라가 있다. 글로벌 전기차 브랜드와 국내 제조사의 맞대결, 그리고 소비자들의 실제 선택이 만들어낸 흥미로운 결과를 함께 살펴보자.
도심형 전기차의 반란, 레이 EV
2025년 상반기 판매량 1위를 기록한 모델은 기아 레이 EV였다. 경차 플랫폼을 기반으로 전동화된 이 모델은 당초 시장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실적을 올렸다. 좁은 도심 환경에서의 기동성, 소형차 특유의 저렴한 유지비, 그리고 전기차 보조금 혜택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췄기 때문이다. 특히 한 번 충전으로 약 210km를 주행할 수 있는 도심형 배터리 성능은 일상 주행에서 부족함이 없다.
기아는 이 모델을 통해 전기차 대중화를 본격화했다. 출고가는 약 2,800만 원대이지만 보조금 적용 시 실제 구매가는 2,000만 원 이하로 떨어진다. 여기에 월 유지비가 극단적으로 낮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차값은 전기차, 유지비는 전동 킥보드”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다.
다만, 너무 높은 인기에 비해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은 소비자들의 불만 요인이다. 실제로 2025년 4~6월에는 일부 지역에서 2개월 이상 대기 기간이 발생했고, 일부 트림은 주문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탈 전기차’를 고민하는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레이 EV는 여전히 1순위다.
실용성과 가성비로 승부
2위를 차지한 모델은 테슬라 모델 Y였다. 한때 ‘국내 최다 판매 전기차’로 군림했던 모델 Y는 2025년 들어 다소 판매세가 꺾였다. 가격 인상, A/S에 대한 불만, 그리고 전기차 보조금 축소 등의 요인이 겹친 탓이다. 하지만 여전히 수입 전기차 중에서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 OTA 업데이트 등에서의 기술력은 여전히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모델 Y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지만, 올해는 국내 브랜드의 추격에 밀려 한 단계 내려섰다. 그러나 인지도와 브랜드 파워, 그리고 장거리 주행 수요층 사이에서는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모델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 3위는 기아 EV5가 차지했다. 2024년 말 출시되어 2025년부터 본격적인 출고가 시작된 EV5는 쏘렌토보다 조금 작은 중형 SUV로, 4,000만 원대의 합리적인 가격과 넉넉한 공간, 그리고 높은 전기차 보조금 수령 가능성으로 빠르게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특히 EV5는 중형 SUV급 전기차를 현실적인 가격에 사고 싶은 소비자층에게 정확히 어필했다. 실내 공간도 넓고, 패밀리카로도 손색이 없으며, 세련된 외관 디자인 역시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 현대 아이오닉 5나 테슬라 모델 Y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는 점에서 가성비 SUV를 원하는 실수요자에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로 떠올랐다.
바뀌고 있는 전기차 시장의 중심
2025년 상반기 판매 순위에서 나타난 가장 큰 흐름은, 전기차가 이제 ‘특별한 차’가 아니라 ‘일반적인 선택지’로 자리를 잡았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전기차가 친환경 또는 실험적인 이미지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실용성과 경제성을 앞세운 대중 전기차가 판매 상위권을 차지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특히 기아는 레이 EV와 EV5를 통해 극단적으로 상반된 세그먼트(경형, 중형 SUV)에서 모두 1,3위를 차지하며 전기차 라인업의 넓은 폭을 자랑했다. 반면, 테슬라는 모델 Y 단일 모델로 2위를 기록하며 브랜드 영향력과 충성도 높은 소비자층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결국 2025년 상반기 판매 순위는 단순히 누가 많이 팔았는지를 넘어서, 시장이 어떤 차를 원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 흐름이 지속된다면, 전기차 시장의 경쟁은 가격, 성능, 유지비를 넘어 실용성과 공급 안정성까지 포함한 종합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