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가격 보고 기름 넣자...”

by 뉴오토포스트

미리 기름값을 공개하는 '내일 가격 표시제'
강력히 반발 중인 한국주유소협회
소비자의 반응과 상반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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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AI 생성

운전자라면 한번쯤은 오늘 주유할지, 아니면 내일 주유할지 고민해봤을 것이다. 기름값이 오를 것이라는 뉴스라도 나오면 주유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는 풍경이 익숙하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로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꺼내 들었다. 바로 주유소가 다음 날 판매할 기름값을 미리 온라인에 공개하는 ‘내일 가격 표시제(주유소 가격 예고제)’다. 소비자들이 가격 등락을 미리 예측하고 합리적인 주유 시점을 정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한 정부의 ‘선한 의도’는 정책 발표와 동시에 거센 역풍에 부딪혔다. 정책의 당사자인 주유소 업계가 “주유소에서 기름 한번 안 넣어본 사람이 만든 것이냐”며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소비자의 편익을 위한다는 정책을 두고 정부와 업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고유가 시대의 해법을 찾으려던 시도가 오히려 극심한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정부의 청사진 “가격 예측 가능성 높여 합리적 소비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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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연합뉴스

정부가 추진하는 ‘내일 가격 표시제’의 설계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정유사가 각 주유소에 공급하는 기름의 도매가격은 통상 전날 오후 4~5시경 결정된다. 이 가격을 기반으로 각 주유소가 자신들의 운영 마진을 더해 다음 날 판매할 소매가격을 책정하고, 이를 오피넷과 같은 주유소 플랫폼에 미리 공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소비자들이 ‘정보의 비대칭’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예를 들어, 내일 가격이 리터당 50원 오른다고 예고되면 소비자는 오늘 미리 주유를 하고, 반대로 가격이 내릴 것으로 예고되면 하루 이틀 주유를 미루는 식의 합리적인 소비 패턴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당장의 유가 안정 효과는 없더라도, 소비자에게 가격 결정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제공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과 함께 단기적인 가계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다.

정부는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며 올해 하반기부터 전국 고속도로 주유소 100곳을 대상으로 ‘내일 가격 표시제’ 시범사업을 우선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시범 운영을 통해 제도의 효과와 문제점을 분석한 뒤, 전국 주유소로 확대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주유소 업계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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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Depositphotos

그러나 정부의 청사진에 대해 한국주유소협회는 ‘현실을 전혀 모르는 소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협회가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재고의 존재다. 정부의 구상은 주유소가 매일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공급받아 다음 날 판매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이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 주장이다.

협회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유소는 유조차 운송비 등을 고려해 한 번에 최소 2주에서 길게는 1달치 판매 물량을 재고로 쌓아두고 영업한다. 즉, 정유사의 일일 공급가격이 오르거나 내리더라도, 주유소는 이미 확보해둔 재고를 소진할 때까지 판매 가격을 거의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일 가격 표시제’를 시행해 봐야 대부분의 주유소는 ‘내일 가격 = 오늘 가격’으로 표시할 수밖에 없어 소비자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정보가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유소들은 불필요한 행정 부담만 가중시키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매일 변동도 없는 가격을 의무적으로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만 떠안게 된다는 불만이다. 이에 주유소 업계는 차라리 과거 시행했던 ‘석유류 가격고시제’를 부활시켜 정부가 직접 기준가격을 정해주는 것이 소비자 혼란을 줄이고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역제안하고 나섰다. ‘가격고시제’는 정부가 정한 가격 이상으로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로, 업계 입장에서는 과도한 가격 경쟁을 피할 수 있고 소비자 역시 바가지요금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주장이다.

소통 없는 정책, 갈등만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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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연합뉴스

‘내일 가격 표시제’를 둘러싼 논란은 소통이 부재한 정책이 어떻게 현장의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소비자의 편익을 높이겠다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핵심 당사자인 주유소 업계의 현실과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선한 의도’는 ‘나쁜 정책’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주유소협회는 정부가 제도를 강행할 경우, 전국 1만여 주유소의 뜻을 모아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하고 나섰다. 고유가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찾아도 모자랄 판에 불필요한 힘겨루기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정책의 실효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업계 역시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합리적인 대안을 함께 모색하는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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